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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2009년 7월 14일





 





초등학교 시절 쌍둥이로 자란 우리 형제는 학교에서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얼굴이 똑같이 닮은 우리들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다. 같은 얼굴에, 늘 같은 옷을 입고 함께 다니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은 학년에 여자 쌍둥이 한 쌍이 더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이란성이라 우리만큼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그렇게 구별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형제는 늘 다른 반에 배치되기도 했다. 보통은 시험 성적에 의해 반이 나뉘었지만 우리는 늘 예외였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주변의 쌍둥이에 대한 관심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후배 중에 또 다른 한 쌍의 일란성 쌍둥이가 들어오면서 쌍둥이에 대한 신비감(?)도 반감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 말고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쌍둥이들끼리 더 신기해했다.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쌍둥이를 같은 반에 배치하지 않는다는 학교 원칙은 중학교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방과 후 청소 시간의 일이다. 종례가 늦어져 우리 반만 늦게까지 청소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복도 청소를 맡은 나는 열심히 바닥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한 시간 간격이었기 때문에 앞 시간의 버스를 타려면 빨리 끝내야만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긴 막대 하나를 들고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평소 인자하시기로 소문난 분인데 그 날의 얼굴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어떤 놈인지 오늘 크게 걸렸구나. 그나저나 단체기합 받게 되면 안 되는데.'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하던 청소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발소리는 내 앞에서 멈췄다. 고개를 드는 순간 선생님은 내 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시더니 당장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하루 일과를 천천히 떠올려 봐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내가 끌려가자 친구들도 다들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날따라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주임 선생님은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종아리를 걷으라 하시더니 들고 있던 막대로 매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종아리가 붉어지도록 매를 맞았다. 막대를 내려놓은 선생님께서는 그때서야 입을 여셨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해야지. 어디 담임 선생님한테 대들어! 그렇지 않아도 너희 선생님 이제 갓 오셔서 적응하기도 힘드실 텐데."


 


"선생님, 전 그 반 아닌데요. 동생하고 착각하셨던 모양인데요."


 


그럼 그렇지! 나는 그때서야 선생님의 화난 이유를 알아차렸다. 전날 동생이 선생님과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굉장히 난감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집에 가서 동생한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라고 이르시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것으로 사건이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쉬는 시간 복도에서 마주친 주임 선생님은 내 머리를 툭 치면서 화를 내셨다.


 


"어제 네놈 때문에 형 맞은 거 알아?"


 


아, 닮은 것도 죄라면 어쩌겠는가? 나는 선생님께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제가 어제 맞았던 그놈인데요."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억울한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피식, 웃음만 났다.






















■ 필자 소개


 




길상호(시인)


197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이 있다. 현대시 동인상과 이육사문학상 신인상, 천상병 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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