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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2009년 7월 9일





 





그러니까 군대 있을 땝니다. 작대기 하나 달고 부대 배치를 받았는데 만두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니까요. 달 보고 보초 서면서 눈물 깨나 흘렸습니다. 남들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또는 영자, 순자, 말자가 보고 싶어 운다고 하지만 전 오로지 만두가 먹고 싶어 울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니까 송편 같은 초승달이 어느 날부터는 만두로 보이는 겁니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세상에 또 어딨습니까? 보안사에 잡혀가 혀가 꼬이도록 뒈지게 맞았습니다. 달 때문이냐고요? 뭐 달이 대한민국 국방부 겁니까. 그게 아니라 제 윗고참 때문이었는데 이 자식이 자신의 수첩에 제 이름을 써넣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참이 사람 좋기는 저희 대대에서 제일 좋았는데 또한 생각이 불온(?)하기로도 제일이었죠. 제가 보안사에 끌려갔을 때 이 고참은 용공인가 좌익인가 하는 세력으로 몰려 완전히 소똥이 돼버렸더라구요. 저도 다른 방으로 끌려가 소가 뒷걸음질하다 밟은 개똥이 되어 버렸죠.


 


그들이 자꾸 불라는 겁니다. 그래 제가 그랬죠. 뭘 불어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닙디다. 자꾸 맞으니까 술술 불게 되더라고요. 뭘 불었느냐면요. 어느 날 동사무소 방위가 영장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고, 그때까지 반백수로 빈둥빈둥거리는 제가 꼴보기 싫으셨던 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시지 못한 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저는 그런 어머니가 미워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던 거하며, 훈련소까지 따라온 친구녀석과 입소 전날 밤에 여관에서 소주를 홀짝거리며 ‘나쁜 새끼 죽여서 땅을 파고 묻을 새끼’ 뭐 이런 가까운 친구일수록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막 주고받다가 옆방에서 들려 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에 놀라 조용히 이불 덮고 자던 거하며, 훈련소에 들어가서는 한 일주일 동안은 똥이 안 나와서 쩔쩔매던 거하고, 그리고 기어이 막혔던 똥이 터져 나온 날 제 똥구멍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시꺼멓게 탄 똥을 보며 서럽게 울던 거하며, 모두 불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말하자 대한민국 육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새끼라며 보안사 대위가 제 정강이를 걷어차 버리더라구요. 그리곤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렸어요. 거꾸로 매달려 보셨어요? 대가리가 개수구멍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온통 피가 대가리로 사정없이 회오리치며 쏠리는데 대가리에 뚜껑이 있다면 딱 따버리고 싶더라니까요. 그리고 불알이 배꼽 쪽으로 쏠리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검은 총신 같은 물건이 얼굴을 향하고 있는 그 기분 정말로 더럽습디다. 하여간 불나게 맞았습니다.


 


그렇게 맞기를 수일. 그쪽에서도 안 되겠나 보더라구요. 그 고참이 제 이름을 쓴 수첩을 제게 보여주더라구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수첩에 이름이 씌어 있는 놈들은 모조리 붙잡혀서 저처럼 고문을 당했다고 합디다. 그런데 웃기게도 제 이름 옆에 괄호 열고 ‘만두’ 괄호 닫고 이렇게 씌어 있는 겁니다. 뭔가 좀 알겠더라구요. 더 이상 그 고참을 미워할 수도 없더라니까요.


 


그런데 보안사 놈들은 제 세뇌명이 ‘만두’ 라는 겁니다. 만두가 뭘 의미하는지 불라는 거예요. 정말 그런 억지는 처음 봤습니다. 그래 전 그 만두는 언젠가 그 고참이 ‘박이병, 너는 뭘 젤로 먹고 싶냐?’ 하길래 만두가 제일로 먹고 싶다고 같이 대대운동장 풀 뽑을 때 말했거든요 그래서 그 고참이 휴가 나갔다 들어올 때 사다 줄려고 그랬을 겁니다, 했죠. 또 맞았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제게 손을 대지 않더라구요. 독종이라고 그러면서 전기나 물을 사용해서 저에게 고통을 줍디다. 그러나 한번 그 고참의 마음을 안 이상 전 끝까지 버텼죠. ‘그건 고참의 아름답고 순순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말자.’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요. 그 자식들이 진술서라고 하는 걸 저에게 줬는데 그 고참이 순진한 저를 ‘만두’라는 암호명을 가진 용공 세포 조직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에 대해 사인하라는 겁니다. 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투쟁은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웠고 나중에 보안사 대위녀석도 줏대 있는 저를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어요. 말투가 달라지더라니까요. 부드럽고 온화해졌어요. 그리고는 양손에 한 가득 만두를 사오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요? 대위의 성의도 있고 해서 만두 먹으면서 진술서에 사인해 버렸죠. 애초에 다 그 만두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이제 그 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만두 때문에 벌어진 사건은 종결된 것이지요. 그 고참도 저를 이해할 겁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오면 그 고참하고 쓸쓸한 산정묘지 같은 곳에 가서 만두나 한판 먹으면서 조용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 필자 소개


 




최치언(시인)


197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과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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