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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2009년 7월 3일_마흔여덟번째





 





대학교 문학 강의실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시와 소설을 공부하는 일은 오래된 나의 즐거움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문학작품 감상방법을 지도할 때 어떤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 해석이란 ‘오독의 역사’일 것이라는 확신을 품은 나는 수강생들에게 교과서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새 해석을 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중간 기말고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길들어 온 수강생들에게서 참신한 해석을 기대하는 일은 다소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드문 일이지만 생뚱맞으면서도 그럴듯한 설을 풀어 대는 친구를 만나면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게 된다. 그중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수영의 대표시 <풀>에 대해서 두 명의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킨 후 그 발표문에 관하여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발표를 맡은 A학생은 이 시에 나오는 “풀”과 “바람”의 상징에 대해서 일반론적인 해석을 잘 정리해 주었다. 그 학생의 요지는 “풀”은 민중을 상징하며 “바람”은 독재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A학생은 김수영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인 문제들까지 조목조목 언급했고, 거기에 덧붙여 그의 다른 시 <폭포>, <껍데기는 가라> 등까지 인용하면서 이미 중등학교 문학 참고서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잘 풀이해 주었기에 큰 오류를 범한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째 발표자인 B학생은 앞서의 발표 내용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나왔다. 그 발표 요지는 “풀”과 “바람”의 관계를 대립 구조로 보지 말고 상호보완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풀”과 “바람”은 서로 도와주는 관계에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함으로써 상대의 존재 의의를 부각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발목” “발밑”이라는 어휘 역시 암울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지도하는 입장에 있던 나는 두 학생 모두를 칭찬해 주면서 A학생보다는 B학생이 참신성 면에서 더 낫지만 B학생의 견해는 다소 검증되지 않은 점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우선 간단한 지적들을 해 준 다음 청중인 다른 학생들에게 더욱 새로운 해석을 해 보라고 했는데, 그 순간 작정을 하고 온 듯 어느 건장한 남학생이 일어나 말하기를 “교수님, 저는 발표한 학형들이 이야기한 것들 모두 다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풀>, 이 작품 아주 간단해요. 이 시는 남녀의 정사를 묘사한 시라구요. ‘풀’은 여자구요, ‘바람’은 남자예요. 이렇게 보면 ‘풀’이 눕고 또 울고 ‘바람’보다 빨리 눕다가도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는 말,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요? ‘풀’이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말 당연하잖아요? 여자들이란 원래 이렇게 주도면밀하고 인내심 있는 존재 아닐까요? 이렇게 위대하고 거룩한 존재가 여성 아니겠습니까?”


 


그 날 그 강의실에서 이 생뚱맞고 용기 있는 한 남학생의 너무나도 새롭고 충격적인(?) 해석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남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다 풀어 낸 후 한참 동안 강의실에는 폭소가 넘쳐흘렀다. 그 웃음 소리를 나는 인위적으로 멈추게 하지 못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남학생의 새로운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 해석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에는 정답이란 게 영원히 없으니 이것만 두고 옳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엉뚱한(?) 해석들을 자꾸 내놓다 보면 어느 날 작품의 정수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비평도 생겨날 것이다.

















■ 필자 소개


 




김종태(시인)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현재 계간 <시평>, 격월간 <정신과표현> 편집위원. 호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및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저서 『한국현대시와 전통성』『정지용 시의 공간과 죽음』『문학의 미로』『떠나온 것들의 밤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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