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39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11일_서른두번째





 





우리 마을에 초상이 났었다.


장성한 네 딸이 모여 아버지 초상을 쳤다. 딸자식이 많은 집 초상은 유난히 슬프다고 했는데 그 집이 그랬다. 사흘 동안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발인하는 날. 상여로 옮기기 직전, 집에서 망자의 마지막 식사 시간이었다. 많이 잡수고 가십시오. 네 딸은 고봉으로 담은 제삿밥을 올리고 나서 꿇어앉았다. 함지박만 한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짜내는 울음을 쉰 목소리로 이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뿌우웅. 네 딸 사이에서 적잖은 방귀가 터져나와 버렸다.


줄지어 서 있던 문상객들은 쿡쿡, 웃음 참느라 곤욕을 보는데 정작 괴로운 이는 딸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있자니 모양새나 상황이 너무 민망했다. 형국 변환 시도로 큰딸이 무작정 몸을 날렸다. 짝, 소리가 나게 방바닥을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요. 아부지 가시는 길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요.”


이러다가 뒤집어쓰겠구나 싶은 둘째가 언니의 자세를 뒤따르며 외쳤다.


“나는 아니요, 아부지. 나는 아니요.”


그럼 셋째인들 가만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없소. 아부지 가시는 길에 이래서는 안 되는 법이요.”


코너에 밀린 막내까지도 바닥을 치며 악 쓰듯 외쳤다.


“아부지는 아실 것이요, 아부지는 정녕 아실 것이요.”


 


우울했던 초상의 끝이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상여 나가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울음과 웃음이 한장소 같은 시간대에 뒤범벅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웃음 소리 돋아났다면 그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벗어났는데 누가 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99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452
2735 명인이 명인을 만든다 風文 2022.12.26 835
2734 실수의 순기능 風文 2022.12.24 816
2733 수치심 風文 2022.12.23 732
2732 걸음마 風文 2022.12.22 929
2731 '그런 걸 왜 하니' 風文 2022.12.21 843
2730 3~4년이 젊어진다 風文 2022.12.20 712
2729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882
2728 불안할 때는 어떻게 하죠? 風文 2022.12.17 817
2727 따뜻한 맛! 風文 2022.12.16 891
2726 실컷 울어라 風文 2022.12.15 861
2725 차 맛이 좋아요 風文 2022.12.14 958
2724 '우리 팀'의 힘 風文 2022.12.13 1414
2723 사랑하는 사람은 안 따진다 風文 2022.12.12 975
2722 삶을 풀어나갈 기회 風文 2022.12.10 905
2721 나이가 든다는 것 風文 2022.12.09 1106
2720 화가 날 때는 風文 2022.12.08 1164
2719 파워냅(Power Nap) 風文 2022.12.07 1222
2718 말보다 빠른 노루가 잡히는 이유 風文 2022.12.06 1162
2717 적재적소의 질문 風文 2022.12.05 956
2716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風文 2022.12.02 1189
2715 신에게 요청하라 3, 4, 5 風文 2022.12.01 853
2714 신에게 요청하라 1, 2 風文 2022.11.30 918
2713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風文 2022.11.28 976
2712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4 - 짐 캐츠카트 風文 2022.11.23 851
2711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風文 2022.11.22 156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