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42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11일_서른두번째





 





우리 마을에 초상이 났었다.


장성한 네 딸이 모여 아버지 초상을 쳤다. 딸자식이 많은 집 초상은 유난히 슬프다고 했는데 그 집이 그랬다. 사흘 동안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발인하는 날. 상여로 옮기기 직전, 집에서 망자의 마지막 식사 시간이었다. 많이 잡수고 가십시오. 네 딸은 고봉으로 담은 제삿밥을 올리고 나서 꿇어앉았다. 함지박만 한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짜내는 울음을 쉰 목소리로 이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뿌우웅. 네 딸 사이에서 적잖은 방귀가 터져나와 버렸다.


줄지어 서 있던 문상객들은 쿡쿡, 웃음 참느라 곤욕을 보는데 정작 괴로운 이는 딸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있자니 모양새나 상황이 너무 민망했다. 형국 변환 시도로 큰딸이 무작정 몸을 날렸다. 짝, 소리가 나게 방바닥을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요. 아부지 가시는 길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요.”


이러다가 뒤집어쓰겠구나 싶은 둘째가 언니의 자세를 뒤따르며 외쳤다.


“나는 아니요, 아부지. 나는 아니요.”


그럼 셋째인들 가만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없소. 아부지 가시는 길에 이래서는 안 되는 법이요.”


코너에 밀린 막내까지도 바닥을 치며 악 쓰듯 외쳤다.


“아부지는 아실 것이요, 아부지는 정녕 아실 것이요.”


 


우울했던 초상의 끝이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상여 나가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울음과 웃음이 한장소 같은 시간대에 뒤범벅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웃음 소리 돋아났다면 그 인생도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곤란한 상황은 벗어났는데 누가 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64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107
2510 교실의 날씨 風文 2023.10.08 887
2509 교환의 비밀: 가난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바람의종 2008.04.22 6776
2508 구경꾼 風文 2014.12.04 8086
2507 구령 맞춰 하나 둘 風文 2020.07.08 1266
2506 구름 위를 걷다가... 바람의종 2012.07.02 6356
2505 구수한 된장찌개 바람의종 2012.08.13 8596
2504 구원의 손길 바람의종 2009.08.31 7052
2503 구조선이 보인다! 風文 2020.05.03 723
2502 국화(Chrysanthemum) 호단 2006.12.19 9358
2501 군고구마 - 도종환 (120) 바람의종 2009.01.24 5742
2500 굿바이 슬픔 바람의종 2008.12.18 8096
2499 권력의 꽃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7.21 11192
2498 권정생 선생의 불온서적 - 도종환 (53) 바람의종 2008.08.09 7580
2497 귀뚜라미 - 도종환 (66) 바람의종 2008.09.05 8386
2496 귀인(貴人) 風文 2021.09.05 636
2495 귀중한 나 바람의종 2009.06.29 5051
2494 귓속말 風文 2024.01.09 690
2493 균형 風文 2019.09.02 958
2492 그 길의 끝에 희망이 있다 바람의종 2012.02.27 4678
2491 그 꽃 바람의종 2013.01.14 8210
2490 그 무기를 내가 들 수 있는가? 風文 2015.02.15 6878
2489 그 사람을 아는 법 윤안젤로 2013.03.18 10046
2488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바람의종 2011.01.25 4572
2487 그 시절 내게 용기를 준 사람 바람의종 2008.06.24 7854
2486 그 아이는 외로울 것이며... 風文 2014.12.30 768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