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07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8일_스물아홉번째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전 친구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자식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큰 병이나 앓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죠. 간혹 보기도 하고, 못 본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근황을 듣기는 하는데 그중에는 전혀 소식을 모를 친구도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인규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인규는 고등학교 때 친구였습니다. 일생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불안한 시기를 함께 보냈으니 유난히 추억거리가 많죠. 서로의 자취방을 숱하게 오가며 라면 끓여먹고 팔씨름도 하고 술에 취하면 쓸쓸한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담양에 있는 그의 집에서 딸기밭 갈고 소똥도 같이 치웠죠.


심지어 낭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던 20대 초반, 지쳐 버린 저는 한동안 그의 자취방에서 밥 끓여먹으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면 서운하고 못 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그런 사이였죠.


저는 20대 후반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절 또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죠. 졸업반 취업 준비 중이던 그는 내 몰골을 보더니 혀를 차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토플, 공무원 시험, 기업의 면접 형태 따위가 자꾸 나왔죠. 내가 심드렁하자 따지듯 물어 왔습니다.  


“너는 임마,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아직도 이 따위로 돌아다니는 거냐.”


나는 소설가가 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피싯, 피싯 웃었습니다.


“소설가가 된다고?”


“그래.”


“소설가 다 뒈졌는갑다. 개나 걸이나 다 소설가 되는 줄 알어.”


“왜, 나는 소설가 되면 안 되냐?”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던 그는 별안간 열 손가락을 쫙 펴보였습니다.


“뭔데?”


“니가 소설가가 되면 이 열 손가락 모두 장을 지진다.”


“정말?”


“걱정 말고 돼 보기나 해라.”


득의만만한 웃음은 쉬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거지 뭡니까. 오래 전 통화가 한두 번 되었는데 첫 번째 소설집이 나온 뒤로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 친구를 찾습니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8553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7825
2701 침착을 되찾은 다음에 風文 2015.08.20 12573
2700 침묵하는 법 風文 2014.12.05 9546
2699 침묵의 예술 바람의종 2008.11.21 7177
2698 침묵과 용서 風文 2024.01.16 930
2697 친절을 팝니다. 風文 2020.06.16 810
2696 친애란 무엇일까요? 바람의종 2007.10.24 10869
2695 친밀함 바람의종 2009.10.27 4991
2694 친밀한 사이 風文 2023.12.29 371
2693 친구인가, 아닌가 바람의종 2008.11.11 7645
2692 친구의 슬픔 風文 2013.07.09 12153
2691 친구와 힐러 風文 2013.08.20 13613
2690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바람의종 2008.09.29 7982
2689 친구(親舊) 바람의종 2012.06.12 7745
2688 치유의 접촉 바람의종 2012.11.21 7014
2687 치유의 장소, 성장의 장소 風文 2019.06.05 773
2686 치유의 문 風文 2014.10.18 11240
2685 치유와 정화의 바이러스 風文 2020.05.05 769
2684 충분하다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바람의종 2010.01.09 6195
2683 충고와 조언 바람의종 2013.01.04 7673
2682 춤추는 댄서처럼 바람의종 2011.08.05 5754
2681 춤을 추는 순간 風文 2023.10.08 539
2680 출발점 - 도종환 (114) 바람의종 2009.01.23 4785
2679 출발 시간 바람의종 2009.02.03 7124
2678 출근길 風文 2020.05.07 6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