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71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8일_스물아홉번째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전 친구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자식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큰 병이나 앓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죠. 간혹 보기도 하고, 못 본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근황을 듣기는 하는데 그중에는 전혀 소식을 모를 친구도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인규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인규는 고등학교 때 친구였습니다. 일생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불안한 시기를 함께 보냈으니 유난히 추억거리가 많죠. 서로의 자취방을 숱하게 오가며 라면 끓여먹고 팔씨름도 하고 술에 취하면 쓸쓸한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담양에 있는 그의 집에서 딸기밭 갈고 소똥도 같이 치웠죠.


심지어 낭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던 20대 초반, 지쳐 버린 저는 한동안 그의 자취방에서 밥 끓여먹으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면 서운하고 못 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그런 사이였죠.


저는 20대 후반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절 또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죠. 졸업반 취업 준비 중이던 그는 내 몰골을 보더니 혀를 차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토플, 공무원 시험, 기업의 면접 형태 따위가 자꾸 나왔죠. 내가 심드렁하자 따지듯 물어 왔습니다.  


“너는 임마,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아직도 이 따위로 돌아다니는 거냐.”


나는 소설가가 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피싯, 피싯 웃었습니다.


“소설가가 된다고?”


“그래.”


“소설가 다 뒈졌는갑다. 개나 걸이나 다 소설가 되는 줄 알어.”


“왜, 나는 소설가 되면 안 되냐?”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던 그는 별안간 열 손가락을 쫙 펴보였습니다.


“뭔데?”


“니가 소설가가 되면 이 열 손가락 모두 장을 지진다.”


“정말?”


“걱정 말고 돼 보기나 해라.”


득의만만한 웃음은 쉬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거지 뭡니까. 오래 전 통화가 한두 번 되었는데 첫 번째 소설집이 나온 뒤로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 친구를 찾습니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05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412
535 두 팔 벌려 안고 싶다 風文 2019.09.02 802
534 인생의 명답 風文 2019.08.06 801
533 혼자 해결할 수 없다 風文 2020.05.03 801
532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風文 2022.09.16 801
531 그리스신화 게시 중단 風文 2023.11.25 801
530 인(仁) 風文 2020.05.03 800
529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風文 2022.02.06 800
528 상대에게 만능을 요청하지 말라 風文 2022.10.10 800
527 평화로운 중심 風文 2020.05.06 799
526 사랑하는 사람은 안 따진다 風文 2022.12.12 799
525 정신력을 단련하는 곳 風文 2023.05.27 799
524 살아 있음에 감사하렴 風文 2023.08.23 799
523 진통제를 먹기 전에 風文 2023.01.27 798
522 짧은 치마, 빨간 립스틱 風文 2022.01.29 797
521 너와 나의 인연 風文 2019.08.30 796
520 마음의 위대한 힘 風文 2023.05.24 796
519 두려움의 마귀 風文 2023.07.30 795
518 거인의 어깨 風文 2019.08.31 794
517 혈당 관리가 중요한 이유 風文 2023.04.13 794
516 육체적인 회복 風文 2023.08.03 794
515 성냄(火) 風文 2022.06.01 793
514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793
513 35살에야 깨달은 것 風文 2023.10.10 793
512 오직 하나뿐인 돌멩이 風文 2022.02.13 792
511 풍족할 때 준비하라 風文 2019.08.26 7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