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94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8일_스물아홉번째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전 친구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자식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큰 병이나 앓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죠. 간혹 보기도 하고, 못 본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근황을 듣기는 하는데 그중에는 전혀 소식을 모를 친구도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인규라는 친구가 그렇습니다.


인규는 고등학교 때 친구였습니다. 일생 중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불안한 시기를 함께 보냈으니 유난히 추억거리가 많죠. 서로의 자취방을 숱하게 오가며 라면 끓여먹고 팔씨름도 하고 술에 취하면 쓸쓸한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담양에 있는 그의 집에서 딸기밭 갈고 소똥도 같이 치웠죠.


심지어 낭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던 20대 초반, 지쳐 버린 저는 한동안 그의 자취방에서 밥 끓여먹으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면 서운하고 못 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그런 사이였죠.


저는 20대 후반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절 또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죠. 졸업반 취업 준비 중이던 그는 내 몰골을 보더니 혀를 차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토플, 공무원 시험, 기업의 면접 형태 따위가 자꾸 나왔죠. 내가 심드렁하자 따지듯 물어 왔습니다.  


“너는 임마,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아직도 이 따위로 돌아다니는 거냐.”


나는 소설가가 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피싯, 피싯 웃었습니다.


“소설가가 된다고?”


“그래.”


“소설가 다 뒈졌는갑다. 개나 걸이나 다 소설가 되는 줄 알어.”


“왜, 나는 소설가 되면 안 되냐?”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던 그는 별안간 열 손가락을 쫙 펴보였습니다.


“뭔데?”


“니가 소설가가 되면 이 열 손가락 모두 장을 지진다.”


“정말?”


“걱정 말고 돼 보기나 해라.”


득의만만한 웃음은 쉬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거지 뭡니까. 오래 전 통화가 한두 번 되었는데 첫 번째 소설집이 나온 뒤로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 친구를 찾습니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18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553
535 여기는 어디인가? 風文 2021.10.31 639
534 익숙한 것을 버리는 아픔 1 風文 2021.10.31 632
533 많은 것들과의 관계 風文 2021.10.31 684
532 59. 큰 웃음 風文 2021.11.05 550
531 소리가 화를 낼 때, 소리가 사랑을 할 때 風文 2021.11.10 651
530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風文 2021.11.10 863
529 숨만 잘 쉬어도 風文 2021.11.10 598
528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 風文 2021.11.10 717
527 지금 이 순간을 미워하면서도 風文 2022.01.09 613
526 올 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2.01.09 666
525 감사 훈련 風文 2022.01.09 480
524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風文 2022.01.09 647
523 소설 같은 이야기 風文 2022.01.09 911
522 더도 덜도 말고 양치하듯이 風文 2022.01.11 706
521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風文 2022.01.11 619
520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風文 2022.01.11 959
519 아버지의 손, 아들의 영혼 風文 2022.01.11 1015
518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風文 2022.01.12 969
517 음악으로 치유가 될까 風文 2022.01.12 1006
516 파도치는 삶이 아름답다 風文 2022.01.12 1034
515 아이들의 잠재력 風文 2022.01.12 621
514 생애 최초로 받은 원작료 風文 2022.01.12 656
513 미래 교육의 핵심 가치 4C 風文 2022.01.13 815
512 내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 風文 2022.01.13 1034
511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風文 2022.01.13 113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