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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2009년 6월 5일_스물일곱번째





 





난 이씨 성에, 이름자가 ‘기분’이야. 터 기(基) 자에 가루 분(粉). 국민학교 시절, 동무들은 툭하면 ‘아, 이 기분!’, ‘기분이 좋아!’ ‘기분아, 기분이 꿀꿀해!’ 해댔지. 내 별명이 ‘눈물순이’, ‘울탱이’였는데, 십중팔구는 이름 때문에 눈물 흘리고 엉엉 운 거였어. 딴에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 무식한 것들, 이 한자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 근동에서 가장 많이 배운 우리 아빠가, 서울에서 전문대학 근처까지 다녔던 우리 아빠가 특별히 신경 써, 아마도 ‘꽃가루가 분분하게 흩날리는 아름다운 터 같은 사람이 돼라’는 바람을 담아 작명해주신 것을, 자 자, 희 자, 경 자, 숙 자, 수 자, 식 자, 호 자… 자 자 돌림밖에 안 되는 것들이 무시하고 지랄들이야, 하고 속으로는 당당했던 거지. 한데 꽃가루보다는 쌀가루에 가까운 가루 분 자였던 거야. 막연히 꽃가루 분 자로 알고 있다가 한참 실망했던 기억이 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역시 좋은 이름이었어. ‘쌀가루가 언제나 흩날리는 풍족한 터처럼 부유한 사람이 돼라’는, 요새 말로 하면 ‘부자가 돼라’는 거 아니겠어.


 


꿈보다 해몽이었지. 부르는 사람들이야 그런 거 생각하나. 기분이란 이름을 들으면 일단 웃음을 머금었고, 남의 이름 가지고 장난말 할 생각이나 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국민학교 때가 이름이 가장 빛날 때였어. 그때는 이름을 무시로 불러 주는 동무들이 있었지. 국졸로 학창 시절을 마감한 이후로는 이름 불러 주는 사람이 없었어. 열여섯 살 때인가 어떤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읽고 펑펑 울었던 게 생각이 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구는,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으니 나는 다만 하나의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처럼 느껴졌어.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시구에서는 철철 울었지. 제발 ‘누가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지. 엄마, 아빠조차도 이름을 안 불러 줬거든. “야!”, “이  년아!”, “첫째야!”, “처녀!”, “십장네 딸내미야!”가 전부였지. 스물두 살에 결혼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 “이봐!” “새댁!”, “작은 엄마!”, “엄마!”, “광이 엄마!”, “라원리 댁”이 전부였지.


 


하지만 이름이 사라졌던 건 아니야. 난 노상 병원 출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약냄새 진동하는 곳에서 잠깐이나마 이름을 되찾고는 했지. 또 마흔 넘어서부터는 농협과 우체국에 계좌를 갖게 되면서 이름이 불리게 됐어. 병원 사람들과 농협, 우체국 사람들은 언제나 이름을 불러 주대. 또 동무들하고 계를 하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 내 이름에 광을 냈지.


 


특히 저번 중국 나들이 4박5일 동안, ‘이기분’이라는 내 이름은 원없이 불려 봤네. 동창애들이 다들 처음 하는 구경 아냐. 어디를 가도 보는 것마다 좋았을 것 아니야. 좋다는 표현을 달리 할 수도 있을 땐데, 애들이 하나같이 “기분좋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워낙 아픈 데가 많았고 특히 다리가 아픈데, 내가 과연 중국 관광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어. 삼일째까지는 괜찮았어. 그것도 다른 애들 높은 데 먼 데 갔다 올 동안 나는 차 안에서 혼자 기다리면서 조금 걸어서 그나마 괜찮았던 거지만. 그런데 마지막 날은 조금도 걷지를 못했어. 그러니 동무들 열여섯이 돌아가면서 “기분아, 괜찮냐?”라고 해 대니, 아주 내 이름이 반짝반짝 빛났다니까














■ 필자 소개


 




김종광(소설가)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에 단편 소설 「경찰서여, 안녕」이,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각각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 『경찰서여, 안녕』『모내기 블루스』『짬뽕과 소주의 힘』『낙서문학사』가 있으며, 장편 소설로는 『71년생 다인이』『야살쟁이록』이 있다. 대산창작기금,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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