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by 바람의종 posted Jun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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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2009년 6월 3일_스물다섯번째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둘째 아이가 두 살 무렵이었다. 발발거리는 동생은 제 언니가 가지고 노는 것들만 좋아했다. 제 언니가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발발발 기어가 책을 붙잡고 늘어져 책장을 찢어 놓기 일쑤였고, 제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발발발 달려가 크레파스를 흩트려 놓거나 그려 놓은 그림에 북북 일 획(劃)을 첨가하기 일쑤였다. 제 언니가 한참을 공들여 블록을 쌓아 놓으면 발발발 기어와 퍽 무너뜨리기 일쑤였고, 제 언니가 맛난 간식을 천천히 먹으려고 아껴 두고 있으면 발발발 달려와 덥석 제 입속에 넣고는 입을 꾹 다물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생기고 질투와 시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때마다 울고불고 난리인 건 늘 첫째 아이였다. 전쟁 아닌 날이 없었다. 급기야 첫째 아이는 제 동생을 괴물 보듯 살살 피해다녔고 때로는 퍽퍽 들고 있던 도구들을 날리기도 했다. 문제는 제 언니가 그러든 말든 둘째가 불굴의 자세로 너무나 꿋꿋하다는 데 있었다.


 


일은 터지게 마련이다. 어느 날 오후 듀엣의 울음 소리가 시간 차로 울려 퍼졌다. 얼굴을 감싼 채 자지러지듯 우는 동생을 마주 보며 첫째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덩달아 울고 있었다. 동생의 왼쪽 볼에는 벌건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첫째 아이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빨로 물었던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혼을 냈다. 그리고는 첫째의 변명을 들어 본즉슨 이러했다. 얼마 전에 선물받은, 그래서 제일 사랑하는 변신로롯을 ‘힘들게’ 겨우겨우 재워 놓았는데, 이불까지 곱게 덮어 놓았는데, 발발발 동생이 달려와서 제 로봇을 깔아뭉개고 입으로 물어뜯었다는 것이다.


 


속상했을 법하지 않은가. 솔로몬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암튼 시시각각의 ‘엄마 노릇’이란 늘 힘에 부치는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쓰리쿠션의 책임 호소작전으로 전환했다. 네가 얼마나 동생을 가지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동생을 낳아 달라고 보챘는지 환기시켰다. 네가 원했던 동생이니까 동생을 사랑해야 하고, 동생은 아직 아가니까 동생에게 양보도 해야 한다고. 첫째도 그런 책임을 느꼈던 것일까 잠시 두 눈을 껌벅이다가, 다시 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땐 몰랐어, 저런 동생이 나올 줄, 정말이야!"














■ 필자 소개


 




정끝별(시인)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신인 발굴 시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5년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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