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411 추천 수 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2009년 6월 2일_스물네번째





 





(비참하고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 사이에는 5, 6공 시절, 운동권 대학생 잡아들여 취조 고문을 하던 이의 사적인 증언이 떠돌았다. 그자의 말에 의하면 삼남(경상 전라 충청)의 특성이 취조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먼저 경상도 학생. 잡아 족치면 한번에 다 분단다. 그 다음 전라도 학생. 족친 만큼만 분단다. 다음날 조금 더 조져 보면 그만큼만 더 나온단다. 가장 독한 애들은 바로 충청도. 아무리 족쳐도  


 


“물류. 그게 아뉴.”


 


소리만 한단다. 빨리 안 불어? 아무리 때리고 거꾸로 매달아도, 뭔 소리를 하는지 당췌 물르겄슈, 잘못 아신규, 소리만 해서 결국 내보내고 말았단다. 뒷날 알고 보니 내보낸 학생이 그들이 찾고 있던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충청도 출신 어느 시인 왈.


 


“독해서 그러기버덤은 갸도 말을 하려고 했을 겨. 막 실토하려고 하는데도 말 안한다고 두들겼을 겨. 그러니 원제 말을 햐.”


 


삼남의 기질 차이는 말투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상도 말은 왜 그렇게 짧고 공격적일까. 답은 산이 높고 날카로워서. 어떤 방문자라도 불쑥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눈앞이라 재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전라도는 리듬을 타야 한다. 산이 낮지는 않지만 구릉이 많고 완만하여 그렇다고 본다. 그럼 충청도는? 평야가 넓은 곳이다. 모르는 이가 저만치에서 나타나면 궁리하기 시작한다. 삼국시대부터 그랬다. 침범이 잦았던 탓에 저것들이 고구려일까, 신라일까, 우리 백제일까, 정보가 모아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기에 직설이 없다.


 


충청도 말이 느린 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답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직설이 없다 보니 비유가 발달했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비유의 언어를 가장 뛰어나게 구사한 분이 돌아가신 명천 이문구 선생이다. <보기 싫은 새끼>가 충청도 언어로 가면 <장마철에 물걸레 같은 새끼>가 된다.


 


일전에 친구들과 술집엘 갔다. 안주가 마땅찮아 주저하고 있는데 빨리 안 시킨다고 안주인이 구시렁거렸다.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뱃속에 간도 있고 쓸개도 있고 곱창도 있고 다 있는데 뭐하러 안주 먹어요. 술만 넣어 주면 되지.”


 


이문구 선생의 단편 <우리동네 김씨>에 나오는 말이다.


 


이정록 시인도 충청도 출신이다. 그가 최근에 아들 운동화를 빨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었다. 자기가 아들녀석 나이였을 때 뭔가를 잘못해서 선친께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저 운동화나 씹어 먹을 자식>이 그건데 무슨 내용인지 오래도록 알지 못하다가 아들 운동화 빠는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도대체 무슨 말일까. 힌트. 댓돌에 신발 벗어 놓으면 누가 와서 이빨로 씹을까).


 


요즘 그는 아들이 잘못했을 때 해줄, 상처가 되지 않고 되레 웃음이 나는 그런 욕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 필자 소개


 




한창훈(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청춘가를 불러요』가 있다.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와 장편소설『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열 여섯의 섬』등이 있다. 동화 『검은섬의 전설』과 공동 산문집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를 펴냈다.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930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8587
2702 약속을 요구하라 주인장 2022.10.20 578
2701 불가능에 도전하라 風文 2022.10.17 603
2700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風文 2022.10.15 544
2699 노동은 네 몫 즐거움을 내 차지 風文 2022.10.13 622
2698 사랑과 관심으로 접근하라 - 제인 넬슨 風文 2022.10.12 613
2697 '사랑의 열 가지 방법'을 요청하라,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말아라 風文 2022.10.11 599
2696 상대에게 만능을 요청하지 말라 風文 2022.10.10 639
2695 거절을 우아하게 받아들여라 風文 2022.10.09 511
2694 평정을 잃지 말고 요청하라 風文 2022.10.08 849
2693 똑같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요청하라 風文 2022.10.07 634
2692 거절을 열망하라 - 릭 겔리나스 風文 2022.10.06 464
2691 먼저 베풀어라 - 중국 설화 風文 2022.10.05 523
2690 타인의 입장에 서서 요청하라 風文 2022.10.04 632
2689 창의적으로 요청하라 - 미네소타 적십자의 표어 風文 2022.10.01 513
2688 긴박감을 갖고 요청하라 - 팀 피어링 風文 2022.09.29 501
2687 요청에도 정도가 있다 風文 2022.09.24 598
2686 꼼꼼하게 요청하라 風文 2022.09.23 866
2685 전문가에게 요청하라 風文 2022.09.22 805
2684 도울 능력이 있는 자에게 요청하라 - 존 테일러 風文 2022.09.21 435
2683 사람들은 원하고 있다, 요청하라! 風文 2022.09.20 832
2682 원하는 결과를 상상하며 요청하라 - 켄 로스 風文 2022.09.19 710
2681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요청하라 風文 2022.09.18 566
2680 기회를 만들어라 - 마이클 헤세 風文 2022.09.17 766
2679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風文 2022.09.16 645
2678 거절은 성공의 씨앗 風文 2022.09.15 6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