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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재난 방지대책 훈련요강 수칙」(시인 정끝별)  


  2009년 6월 1일_스물세번째





 





어우야담에 나오는 얘기다. 옛날 어느 장수가 수하의 십만 병사들에게 물었다, “이 가운데 아내가 무서운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무섭지 않은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 모든 병사가 붉은 깃발 아래 모였는데 오직 한 병사만이 ‘올연(兀然)히’ 푸른 깃발 아래 섰다. 장수가 물었다, “너는 아내가 무섭지 않느냐?”. 한 병사가 되물었다. “제 아내가 항상 ‘남자 셋이 모이면 여색(女色)을 논하니, 남자 셋이 모인 곳에 일절 가지 말라’ 했는데, 하물며 지금 십만의 남자가 모여 있지 않습니까?”
이쯤 되면, 한 병사네 가훈은 필시 이러했을 것이다, “사람 많이 가는 데 가지 마라”. 세칙 조항 중 그 일이 “남자는, 남자 셋 이상 모여 있는 데 가지 마라”였을 것이다. 가훈이 별건가. 그 집안의 수장(首將)이 되풀이하는 잔소리, 그 ‘말쌈’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인생재난 방재대책 훈련요강 수칙’들인 셈이다. 그게 또 ‘인생성공 촉진대책 훈련요강 수칙’이기도 하니까.
한 선배네 ‘인생재난 방재대책 훈련요강 수칙’의 그 세칙 조항들은 이렇다. 그 일(一),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라. 이거 중요하다. 일생을 좀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낙법(落法)에 도통할수록 인생은 안전하다는 걸. 낙법의 가장 손쉬운 방법이 손을 이용하는 것. 손이 바닥을 먼저 짚는 한, 최소한 머리는 안전한 법.
그 일(一), 엘리베이터 탈 때 바닥을 확인하라. 인생은 자주 상승하고 하강한다. 상승과 하강의 고속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는 법이다. 이때 우리는 잠시 침착해야 한다. 바닥이 있는지 확인하고 타야 안전하다. 바닥 모를 나락으로 영영 추락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 일(一), 건널목 건널 때는 가운데 서라. 뭐, 꼭,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건널목 사고의 팔할은 최첨단이나 최후단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 그 어떤 불행이, 우리 인생을 향해 덮쳐올지 모르는 일. ‘가만 있으면 가운데는 간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학원과 학교와 학벌과 학연의 사각 링 위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학학대며 갈팡질팡하다 내 그럴 줄 알고도 남은직한 시한부 교육정책에 시달리는, 두 아이들을 향한 ‘인생재난 방재대책 훈련요강 수칙’을 나도 이렇게 수정했다. “공부를 못하는 건 용서하지만,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이성을 잘 만나야 인생의 4분의 3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법. 1등이, 특목고가, 스카이대학만이 대수겠는가?














■ 필자 소개


 




정끝별(시인)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신인 발굴 시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5년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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