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994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칠번출구」(시인 정끝별)   2009년 5월 21일_열여덟번째





 





문자가 날아왔다. “사호선○○○역칠번출구방의원입니다 031-383-××××”. 뭠미? 어젯밤 모임에서 만났던 지인이었다. 문자를 날렸다. “메시지잘못왔어유^^ 난아직도몽롱@@중인데 벌써또한껀을?^^”. 문자를 잘못 날린 지인이 갑자기 정다워졌다. 나만 잘못 날리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훈훈한 동지애로 화하는 찰나였다.


 


모처에 심사하러 갔을 때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으로 후배가 와 있었다. 부문별로 방을 달리해 진행되었기에 먼저 끝나면 문자를 날리기로 했다. 내가 먼저 날렸다, “우린끝!”.


 


심사 뒤풀이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배 마누라로부터 부르르 부르르 진동이 계속 왔다. 식사를 끝내고 후배와 함께 나오면서 전화를 걸 때까지도 몰랐다. “우린끝!”이 후배가 아닌, 선배 마누라에게 잘못 갔다는 걸.


문제는 뜬금없는 ‘우린끝!’을 받은 선배 마누라. 상상력이 마구마구 발동하기 시작. 선배에게 득달같이 전화해 “혹시 당신에게 올 메시지 아냐?" 심문도 해보다 급기야 선배와 머리를 맞대고 아귀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도 전화로. 결론은, 연애하는군, 그런데 싸웠나, 아니 헤어졌군, 이었단다. 그리고는 딱 걸렸으니 대란다, 누구였냐고. 아쉽게도(!) 선배 마누라가 후배를 아는 사이여서 전화까지 바꿔주며 버선목을 뒤집어 버리기는 했으나…


 


문자는 늘 짧게 마련이고, 선배 마누라가 후배와 이름이 비슷했다는 게 문제였다면 문제. 수신자 이름 입력 검색 중 커서가 한 칸 더 내려갔었나 보다. 뭐, 한두 번 일도 아니다. 시집을 낼 때였다. 추천의 글을 메일로 확인한 후 인쇄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오후가 다 가는데도 도통 기별이 없었다. 문자를 날렸다. "종일기다리다눈이빠질지경이야요@@". 느닷없는 스승뻘 소설가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기다려라달려간다칠번출구!" 아, 이건 또 뭠미?


 


어쨌든, 어젯밤의 지인에게 문자를 날린 직후였다. 어젯밤 모임에서 발모제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지인이 십 년은 젊어 보며 그 연락처를 물었던 기억이 때늦은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속알머리’ 없는 나도 나려니와 ‘주변머리’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한 남편을 위해 물었던 것이다. 훈훈한 동지애가 싸늘한 열패감으로 화하는 찰나였다. 다시 문자를 날렸다. "아하^^ 헤어! 제가착각@@ 감솨-*_*" 금세 문자가 날아왔다. "병원이름이방이에요ㅋㅋ 즐모 성취하소서!"


 














■ 필자 소개


 




정끝별 (시인)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신인 발굴 시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2005년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60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070
535 여기는 어디인가? 風文 2021.10.31 837
534 익숙한 것을 버리는 아픔 1 風文 2021.10.31 736
533 많은 것들과의 관계 風文 2021.10.31 931
532 59. 큰 웃음 風文 2021.11.05 687
531 소리가 화를 낼 때, 소리가 사랑을 할 때 風文 2021.11.10 808
530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風文 2021.11.10 1128
529 숨만 잘 쉬어도 風文 2021.11.10 845
528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 風文 2021.11.10 891
527 지금 이 순간을 미워하면서도 風文 2022.01.09 844
526 올 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2.01.09 932
525 감사 훈련 風文 2022.01.09 607
524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風文 2022.01.09 861
523 소설 같은 이야기 風文 2022.01.09 1094
522 더도 덜도 말고 양치하듯이 風文 2022.01.11 860
521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風文 2022.01.11 790
520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風文 2022.01.11 1144
519 아버지의 손, 아들의 영혼 風文 2022.01.11 1216
518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風文 2022.01.12 1141
517 음악으로 치유가 될까 風文 2022.01.12 1097
516 파도치는 삶이 아름답다 風文 2022.01.12 1213
515 아이들의 잠재력 風文 2022.01.12 836
514 생애 최초로 받은 원작료 風文 2022.01.12 803
513 미래 교육의 핵심 가치 4C 風文 2022.01.13 937
512 내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 風文 2022.01.13 1185
511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風文 2022.01.13 134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