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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웃음을 웃고 싶다」(시인 김기택)   2009년 5월 19일_열여섯번째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웃음은 '웃음을 위한 웃음'일 것이다. 그것은 나오고 싶어 저절로 나온 웃음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의무적으로, 습관적으로 얼굴에 만드는 웃음이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듯 얼굴에 그리는 웃음이다. 웃어서 손해날 일은 없으니까, 상대방에게 나쁠 것은 없으니까, 웃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대인관계에서 꼭 필요하니까, 이런 웃음도 있기는 있어야 한다. 그 웃음은 생활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돈과 같은 것이다. 생활이며, 인간관계의 윤활유이며, 살아가는 기술이다. 감정노동을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웃음처럼 교환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웃음도 생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이런 웃음이 좋으니 나쁘니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만큼 활력이 약할 뿐이다.



내가 웃고 싶은 웃음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절로 나오는, 생명체와 같이 제 힘으로 움직이는 웃음이다. 이를테면 갓난애의 웃음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작은 입과 코와 눈이 구부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천국이다. 아기가 웃으면 주변이 다 환해진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아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그들의 얼굴은 추운 밤에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처럼 환하고 따뜻해 보인다. 사무적인 표정이나 근엄한 표정도, 화난 얼굴이나 무표정한 얼굴도, 노인이나 청년의 얼굴도 하나같이 어린아이처럼 녹아 부들부들해진다. '까꿍'과 감탄사를 연발하며, 볼을 불룩하게 하거나 눈을 까불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꼴불견이라고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천상에서 막 내려온 것 같은 아기 웃음의 위력은 놀랍다.



동네에서,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나누는 웃음도 즐겁고 아름답다. 할머니들이 웃으면 얼굴의 주름도 함께 웃는다. 주름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된 생명체 같다. 그 주름은 늙음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의 힘이 저절로 흘러넘쳐 밖으로 나온 꽃이나 열매 같다. 그때 주름들은 깔깔깔 웃음 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흔들리면서 활짝 피어난다. 그 주름들이 만드는 무늬의 질서와 조화는 잘 정리된 시골 논밭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닮았다. 아무렇게나 배열된 나무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숲을 보는 것 같다. 이 웃음 속에서는 이 빠진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나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는 말소리까지도 잘 어울린다.



아이가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웃음도 즐겁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간지럼이라도 태우고 있다는 듯, 제 안에서 넘치는 웃음이 너무 많아서 좁은 입구멍으로는 다 쏟아 낼 수 없다는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웃음이 되어 굴러다니는 웃음이다. 그렇다고 그 웃음을 터뜨리게 한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엄마의 방귀나 아빠의 썰렁한 농담, 학교에서 매일 생기는 평범한 일상 정도인데, 그것이 웃음주머니를 한번 톡 건드리면 마술처럼 웃음이 무한정 나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교실에서 터져 나오는 학생들의 웃음, 술이 무장해제시키고, 사는 이야기가 부추긴 술자리의 웃음, 꼬리치는 여자의 웃음도 생활에 활력을 주는 즐거운 웃음이다.


 


 














■ 필자 소개


 




김기택 (시인)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영어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89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태아의 잠』과 『바늘 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등을 냈고, 『태아의 잠』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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