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578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민들레 뿌리 /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 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 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올해는 겨울 가뭄이 참 오래갑니다. 사람들이 먹을 물도 부족하지만 대지도 목마름으로 쩍쩍 갈라집니다. 그 흙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들도 목이 마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 소식 없는 날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뭄이 깊으면 "튼실한 꽃은커녕 /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메마르고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살기가 힘들고 목은 바짝바짝 탄다고 합니다. 하던 일을 접거나, 보따리를 싸거나 삶의 반경을 절반으로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곧게 아래로 내"립니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깊어져 갑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침착하게 행동하고 진지해집니다. 경박하지 말고 진지해져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져야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019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9499
577 그 아이는 외로울 것이며... 風文 2014.12.30 7523
576 매뉴얼 風文 2015.01.14 7537
575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541
574 작은 상처, 큰 상처 風文 2015.08.09 7546
573 일본인의 몸짓, '허리들기' 바람의종 2011.08.25 7555
572 인간성 바람의종 2012.02.16 7557
571 좋은 디자인일수록... 風文 2014.12.13 7561
570 내 몸 風文 2015.07.30 7561
569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요" 바람의종 2009.07.06 7566
568 세상을 사는 두 가지의 삶 바람의종 2008.03.14 7567
567 진정한 감사 風文 2014.12.16 7574
566 '나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 바람의종 2012.07.27 7576
» 민들레 뿌리 - 도종환 (144) 바람의종 2009.03.18 7578
564 나는 걸었다 윤안젤로 2013.04.19 7579
563 말을 안해도... 風文 2015.02.14 7584
562 자랑스런 당신 바람의종 2008.12.23 7591
561 과식 바람의종 2013.01.21 7592
560 지하철에서 노인을 만나면 무조건 양보하라 바람의종 2008.05.22 7593
559 청소 바람의종 2008.11.03 7593
558 소금과 호수 바람의종 2008.03.18 7594
557 3,4 킬로미터 활주로 바람의종 2012.11.21 7604
556 "10미터를 더 뛰었다" 바람의종 2008.11.11 7606
555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바람의종 2009.06.17 7607
554 창조 에너지 風文 2014.11.24 7609
553 칫솔처럼 風文 2014.11.25 76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