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03.03 16:14

욕 - 도종환 (137)

조회 수 6227 추천 수 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모악산 금산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합니다. 종교가 다른 이들이나 외국인들도 금산사의 절 체험에 많이 참여합니다. 일주일간의 참선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템플스테이를 주관하시는 일감 스님에게 인사를 하며 "스님, 저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아내가 자기에게 욕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야 이 나쁜 놈아"하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갑자기 반말로 욕을 해대는 스님을 보며 남자는 "아니 스님 왜 욕을 하십니까?" 하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스님은 "나는 한 번 욕을 했지만 너는 일주일 내내 백번도 더 욕을 했잖아."하고 소리치셨습니다. 참선을 한다고 절방에 앉아서 일주일 내내 아내를 미워하고 속으로 욕하고 그것이 결국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스님은 생각하신 거겠죠.

"너 같이 모자란 놈에게 네 아내가 십 년 동안 한번밖에 욕을 안했다면 네 아내는 참으로 착한 여자야."

스님의 욕설을 듣고 있던 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세 번 절하고 산문을 내려갔습니다.

스님은 그 남자도 착한 남자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꾸지람과 호통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절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참선이란 자기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도를 깨닫는 것도 결국 자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살면서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는 것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게 깨닫는 것이라는 거지요.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실망스러운 감정은 바로 자신 속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화를 내거나 아내를 욕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자기에게 어떻게 욕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지만, 욕설과 분노는 남자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라는 겁니다.

일주일을 선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욕을 해서라도 깨닫게 해 주는 스님이 곁에 계신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969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9042
2002 뿌듯한 자랑 風文 2014.12.01 6241
2001 혼자 있는 즐거움 風文 2014.12.07 6240
2000 아이는 풍선과 같다 風文 2015.01.05 6236
1999 '철없는 꼬마' 바람의종 2009.05.06 6232
1998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바람의종 2009.06.20 6232
1997 이글루 바람의종 2009.02.19 6231
1996 한 사람이 빛을 발하면... 바람의종 2011.09.29 6231
» 욕 - 도종환 (137) 바람의종 2009.03.03 6227
1994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용기 바람의종 2008.11.25 6223
1993 불과 나무 - 도종환 (126) 바람의종 2009.02.04 6220
1992 정신의 방이 넓어야 노년이 아름답다 바람의종 2009.11.19 6214
1991 덕 보겠다는 생각 바람의종 2012.10.17 6208
1990 콩 세 알을 심는 이유 바람의종 2009.09.18 6206
1989 몸이 하는 말 바람의종 2009.04.30 6204
1988 충분하다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바람의종 2010.01.09 6200
1987 생사의 기로에서 風文 2015.02.17 6199
1986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1) - 도종환 (100) 바람의종 2008.11.29 6197
1985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 도종화 (51) 바람의종 2008.08.01 6194
1984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 바람의종 2009.02.01 6194
1983 '무의식'의 바다 바람의종 2012.08.13 6194
1982 흐르게 하라 바람의종 2009.12.23 6188
1981 새 - 도종환 (135) 바람의종 2009.03.01 6177
1980 그리움 바람의종 2011.11.02 6173
1979 「미소를 600개나」(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23 6169
1978 좋을 때는 모른다 바람의종 2011.09.27 616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