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1 14:01
새 - 도종환 (135)
조회 수 6287 추천 수 10 댓글 0
고고한 몸짓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물가 진흙탕에 내려 물고기를 잡아먹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비린 물고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 우아하던 날개에 온통 진흙칠을 하고 있는 다리 긴 새들. 꽉 다문 조개의 입을 벌리기 위해 부리로 여기저기 두드리거나 들었다 놓는 동안 깃털과 입가에 온통 흙물을 묻힌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들. 점점 더러워지는 물가, 줄어드는 먹이, 그래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선 뻘흙을 파지 않으면 안 되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이를 찾는 그 새들의 처절한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다른 생각이 듭니다. '소름끼치는 털투성이 벌레를 잡아먹어 가면서도 저 새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구나. 온 몸에 흙칠을 해가면서도 저 새들은 다시 하늘로 날아가는구나. 제 하늘 제 갈 길을 찾아 가는구나. 저렇게 하면서 제 소리 제 하늘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새들이라고 이슬만 마시거나 귀한 나무열매만을 먹으며 고고하게 사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사는구나. 그들의 그런 처절함을 보지 않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며 그저 편한 생각, 인간 위주의 한가한 생각만을 해 왔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은 사람도 짐승도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닙니까? 생존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런 뜨거운 면이 있으면서 그걸 못 본 체 안 본 체 외면하며 사는 때는 없는지요.
물론 제 한 목숨 지탱하는 일만을 위해 약한 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존의 최고 가치는 약육강식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탐욕스러움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짐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먹이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아름다운 소리를 숲에 되돌려 주는 새처럼,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에 가득한 새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땀 흘려 일하고 그 건강한 팔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성실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나서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지니는 사람은 훌륭하게 보입니다. 궂은 일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스럽게 일하면서도 자상한 엄마와 따뜻한 아빠로 돌아와 있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스럽습니다. 거기에 여유와 나눔과 음악 한 소절이 깃들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는 일은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오늘 똑같은 그 새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니 똑같은 그 새들을 다르게 봅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4333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3809 |
2635 | 억지로라도 밝게 웃자 | 風文 | 2020.05.05 | 823 |
2634 |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한다면 | 風文 | 2022.01.29 | 823 |
2633 | '내가 왜 사는 거지?' | 風文 | 2023.06.08 | 823 |
2632 | 마음의 위대한 힘 | 風文 | 2023.05.24 | 824 |
2631 | '정말 힘드셨지요?' | 風文 | 2022.02.13 | 825 |
2630 | 허둥지둥 쫓기지 않으려면 | 風文 | 2022.06.04 | 825 |
2629 | 자기 암시를 하라 | 風文 | 2022.09.07 | 825 |
2628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21. 주기 | 風文 | 2020.06.21 | 827 |
2627 | 건성으로 보지 말라 | 風文 | 2022.01.29 | 827 |
2626 | 엄마를 닮아가는 딸 | 風文 | 2022.04.28 | 827 |
2625 | 1%의 가능성을 굳게 믿은 부부 - 릭 겔리나스 | 風文 | 2022.08.29 | 827 |
2624 | 하코다산의 스노우 몬스터 | 風文 | 2024.02.24 | 827 |
2623 | '억울하다'라는 말 | 風文 | 2023.01.17 | 828 |
2622 |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 | 風文 | 2019.08.15 | 829 |
2621 | 잊을 수 없는 시간들 | 風文 | 2019.08.26 | 829 |
2620 | 역지사지(易地思之) | 風文 | 2019.08.27 | 829 |
2619 | 몽당 빗자루 | 風文 | 2022.01.26 | 829 |
2618 |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 風文 | 2022.10.15 | 829 |
2617 | 시간이라는 약 | 風文 | 2023.08.17 | 829 |
2616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7.2. | 風文 | 2023.11.15 | 829 |
2615 | '건강한 감정' 표현 | 風文 | 2023.09.21 | 830 |
2614 | 삶의 변화 | 風文 | 2020.05.30 | 831 |
2613 | 사랑과 관심으로 접근하라 - 제인 넬슨 | 風文 | 2022.10.12 | 831 |
2612 | 11. 아프로디테 | 風文 | 2023.11.01 | 831 |
2611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1. 평범성 | 風文 | 2020.06.06 | 8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