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9014 추천 수 1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자작나무 - 도종환

북유럽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지방에서는 자작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껍질이 희고 옆으로 얇게 벗겨지며 키가 큰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북의 깊은 숲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추운 삼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내성적이고 과묵하다고 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보기에는 좋지만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어로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고독과 사적 자유를 즐기고 술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으며 타인과도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산다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 자작나무를 보며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졸시 「자작나무」전문

저는 자작나무를 보면서 희고 맑은 빛깔의 나무지만 한편으론 창백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운 나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모습이 나와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추운 데서 자란 모습이 저하고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눈보라와 북서풍이 아니었다면 희고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겁니다. 사는 동안 내내 그치지 않던 추위와 혹독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소나무처럼 독야청청하기보다 옆의 나무를 찾아가 숲을 이루고 있을 때 자작나무는 더 아름답습니다.

자작나무가 많은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겉으로 보면 말이 없고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깊다고 합니다. 수다를 떨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대신 성격이 차분하다고 합니다. 허세를 부리거나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다고 합니다. 지리적 환경적 영향으로 끈기가 있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립심과 독립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고 눈이 가득 쌓인 숲속의 눈부시게 희디흰 자작나무들을 생각합니다. 이 겨울, 고독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 고독과 추위 속에서 안으로 깊어져 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95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426
410 사사로움을 담을 수 있는 무한그릇 바람의종 2008.02.03 8326
409 외로움 때문에 바람의종 2012.11.14 8329
408 1만 시간의 법칙 바람의종 2012.12.21 8329
407 나그네 바람의종 2007.03.09 8333
406 고마워... 윤안젤로 2013.03.07 8334
405 "일단 해봐야지, 엄마" 風文 2014.12.24 8336
404 "우리는 행복했다" 바람의종 2013.02.14 8343
403 이야기가 있는 곳 風文 2014.12.18 8346
402 '찰지력'과 센스 바람의종 2012.06.11 8351
401 solomoon 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17대 대선 특별판) 바람의종 2007.12.20 8366
400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風文 2015.08.09 8372
399 귀뚜라미 - 도종환 (66) 바람의종 2008.09.05 8375
398 아플 틈도 없다 바람의종 2012.10.30 8377
397 전혀 다른 세계 바람의종 2008.10.17 8381
396 「쌍둥이로 사는 일」(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4 8385
395 이거 있으세요? 바람의종 2008.03.19 8387
394 곡선의 길 바람의종 2012.12.27 8391
393 한 번쯤은 바람의종 2009.04.25 8396
392 행복한 미래로 가는 오래된 네 가지 철학 바람의종 2008.04.16 8405
391 희망의 발견 바람의종 2009.06.17 8406
390 신성한 지혜 風文 2014.12.05 8409
389 젊은 친구 윤안젤로 2013.03.05 8411
388 절제, 나잇값 風文 2014.12.18 8411
387 큐피드 화살 風文 2014.11.24 8412
386 선암사 소나무 風文 2014.12.17 841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