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4713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산맥과 파도


겨울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바위에 제 몸을 몰아다가 던지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습니다. 아아아, 소리 지르며 보았습니다.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게 터져 올랐습니다. 물결이 물결의 등을 밀고와 끝없이 쓰러지는 파도를 보며 아름다운 소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서지면서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끝없이 파도치고 있어서 아름다운 바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밀려올 때도 있고 밀려갈 때도 있지만 그것 자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외설악의 산맥을 보았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다웠습니다. 눈보라 치고 눈이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보라 치는 날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앞산이 뒷산 또 그 뒷산과 이어지며 험한 능선끼리 모여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요? 험한 삶을 험한 채 놓아두시지 말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도 격랑인 채로 놓아두지 마십시오. 암초를 만나서 파도는 더욱 아름답게 솟구쳐 오르지 않습니까? 아니 그냥 겨울동해바다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한나절쯤 바라보다 오시기 바랍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173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1156
2681 축복을 뿌려요 風文 2015.06.29 6238
2680 추억의 기차역 바람의종 2012.10.15 8687
2679 최악의 시기 바람의종 2010.09.14 5444
2678 최악의 경우 바람의종 2010.10.15 4180
2677 최상의 결과를 요청하라 風文 2022.10.15 662
2676 최고의 유산 바람의종 2008.10.11 6718
2675 최고의 보상 바람의종 2012.11.09 9951
2674 촛불의 의미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6.09 7927
2673 초점거리 윤안젤로 2013.03.27 10982
2672 초록 꽃나무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3 10227
2671 초능력의 날개 風文 2014.12.15 6847
2670 초겨울 - 도종환 (109) 바람의종 2008.12.23 8320
2669 첼로를 연주할 때 윤안젤로 2013.04.11 10069
2668 체 게바라처럼 바람의종 2012.10.04 8678
2667 청춘의 특권 風文 2013.07.09 12748
2666 청춘의 기억 바람의종 2012.04.30 6633
2665 청춘의 권리 風文 2014.12.28 7659
2664 청춘, 그 금쪽같은 시간 바람의종 2011.01.30 5571
2663 청춘 경영 바람의종 2010.09.27 4258
2662 청소 바람의종 2008.11.03 7660
2661 청년의 가슴은 뛰어야 한다 바람의종 2009.07.13 5566
2660 청년의 가슴은 뛰어야 한다 風文 2014.08.18 9156
2659 청년은 '허리'다 風文 2023.11.14 1498
2658 청년들의 생존 경쟁 風文 2020.07.17 1691
2657 청년들의 생존 경쟁 風文 2023.07.30 93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