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4831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산맥과 파도


겨울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바위에 제 몸을 몰아다가 던지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습니다. 아아아, 소리 지르며 보았습니다.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게 터져 올랐습니다. 물결이 물결의 등을 밀고와 끝없이 쓰러지는 파도를 보며 아름다운 소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서지면서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끝없이 파도치고 있어서 아름다운 바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밀려올 때도 있고 밀려갈 때도 있지만 그것 자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외설악의 산맥을 보았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다웠습니다. 눈보라 치고 눈이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보라 치는 날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앞산이 뒷산 또 그 뒷산과 이어지며 험한 능선끼리 모여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요? 험한 삶을 험한 채 놓아두시지 말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도 격랑인 채로 놓아두지 마십시오. 암초를 만나서 파도는 더욱 아름답게 솟구쳐 오르지 않습니까? 아니 그냥 겨울동해바다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한나절쯤 바라보다 오시기 바랍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883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389
385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風文 2015.01.14 7045
384 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바람의종 2012.10.30 8213
383 가장 쉬운 불면증 치유법 風文 2023.12.05 689
382 가장 생각하기 좋은 속도 風文 2022.02.08 1194
381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잘 안다 바람의종 2009.07.01 5347
380 가장 빛나는 별 바람의종 2012.07.23 6905
379 가장 놀라운 기적 風文 2024.05.10 432
378 가장 강한 힘 바람의종 2010.01.23 5515
377 가을이 떠나려합니다 風文 2014.12.03 8284
376 가을엽서 - 도종환 (73) 바람의종 2008.09.24 7289
375 가을 오후 - 도종환 (94) 바람의종 2008.11.15 8315
374 가슴이 뛰는 삶 윤영환 2011.01.28 4429
373 가슴으로 답하라 윤안젤로 2013.05.13 7987
372 가슴에 핀 꽃 風文 2014.12.24 9447
371 가슴에 불이 붙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바람의종 2011.01.31 4540
370 가슴높이 바람의종 2009.11.15 4783
369 가슴높이 바람의종 2011.07.28 4548
368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風文 2023.04.18 787
367 가볍고 무른 오동나무 風文 2021.09.10 780
366 가벼우면 흔들린다 風文 2015.07.02 6110
365 가만히 안아줍니다 風文 2021.10.09 722
364 가난해서 춤을 추었다 風文 2014.12.04 8461
363 가난한 집 아이들 바람의종 2009.03.01 7219
362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 윤안젤로 2013.04.11 10515
361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風文 2019.08.07 86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