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398 추천 수 1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화이부동(和而不同)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덕담을 한자성어처럼 압축된 말로 줄여서 전하기도 합니다. 시화연풍이니 근하신년이니 하는 말들이 그렇습니다. 《교수신문》이 180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한 해 희망을 주는 사자성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화이부동' 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 일간지가 전합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참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논어』'자로' 편에 나옵니다. 군자는 화합하고 화목하되 남들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화이부동의 부동(不同)을 더 넓게 보면 남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신 없이 남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합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와 대화하고 공통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화합의 과정입니다. 화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념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온 지역과 문화가 다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아우르고 대립을 최소화하며 싸움과 전쟁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차이와 불평등을 인정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풀어가며 공통의 이해를 끌어내어 평등하고 민주적인 결론을 도출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정치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어려운 것입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하기는 쉽습니다. 나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하고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그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같은 이해관계만을 관철하는 일은 쉽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힘으로 누르고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관철시키고 복종하게 하는 일은 편한 방법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 하고 어떻게 일하느냐는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 평가를 받아야 할 때 가장 아프게 지적받는 것 중의 하나가 화이부동하지 못하고 동이불화한 정권이었다는 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사회적으로 불균형한 것을 조정하고 최소화해나가는 것을 정치라고 합니다.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동의 논리에서 화의 논리로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싸움보다는 화합, 힘보다는 대화, 전쟁보다는 평화, 지배와 억압보다는 공존공생, 차별보다는 존중, 편견과 무시보다는 관심과 인정이 필요합니다. 정치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고 국제관계와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화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화의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아니 화의 논리야말로 신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웃,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끝없이 요구하는 분이 우리가 믿는 신입니다. 우리들 각자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동이불화하지 말고 화이부동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50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965
2985 진득한 기다림 바람의종 2008.02.03 7208
2984 사사로움을 담을 수 있는 무한그릇 바람의종 2008.02.03 8276
2983 하늘에서 코끼리를 선물 받은 연암 박지원 바람의종 2008.02.09 14111
2982 진실한 사랑 바람의종 2008.02.11 8237
2981 어머니의 한쪽 눈 바람의종 2008.02.12 6245
2980 나는 네게 기차표를 선물하고 싶다 바람의종 2008.02.13 7865
2979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람의종 2008.02.14 6997
2978 신종사기 바람의종 2008.02.15 7337
2977 사랑 바람의종 2008.02.15 7754
2976 깨기 위한 금기, 긍정을 위한 부정 바람의종 2008.02.15 8805
2975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된 세계 바람의종 2008.02.16 6665
2974 안병무 '너는 가능성이다' 中 바람의종 2008.02.17 10769
2973 닥터 지바고 중 바람의종 2008.02.18 6657
2972 젊은 날의 초상 中 바람의종 2008.02.19 8134
2971 이성을 유혹하는 향수, 그 실체는? 바람의종 2008.02.19 9897
2970 사랑을 논하기에 앞서.. 바람의종 2008.02.20 6160
2969 참새와 죄수 바람의종 2008.02.21 10047
2968 테리, 아름다운 마라토너 바람의종 2008.02.22 8878
2967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636
2966 나의 아버지는 내가... 바람의종 2008.02.24 7360
2965 죽음에 대한 불안 두 가지. 바람의종 2008.02.25 7011
2964 박상우 <말무리반도> 바람의종 2008.02.27 10031
2963 엄창석,<색칠하는 여자> 바람의종 2008.02.28 11404
2962 김인숙 <거울에 관한 이야기> 바람의종 2008.02.29 11211
2961 '사랑 할 땐 별이 되고'중에서... <이해인> 바람의종 2008.03.01 751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