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486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세 가지 즐거움

며칠 쉬는 겨울휴가 동안 인제 내린천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습니다. 몇몇 친한 벗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편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상촌 신흠선생은 야언(野言) 이란 글에서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어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휴가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주어지면 누구나 이 세 가지 중의 어느 한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역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마음에 맞는 벗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평상시에 가보고 싶어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 이 세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이었던 적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이보다 더 많은 볼거리 더 많은 즐길거리들이 널려 있으므로 휴가를 보내는 방식도 훨씬 넓고 다양하고 풍부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겨울강가의 작은 집에서 마당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그 위에 소금뿌려 생선이나 조개를 굽고 찬 더덕술 한 잔을 마시며 고개를 꺾다 상현달을 올려다보는 낯선 일박도 즐거운 일로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겨울 하늘 상현달 옆에 떠서 홀로 빛나는 별이 샛별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다툰다든가, 북두칠성이 늘 같은 자리에 떠 있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의견이 안 맞기도 하고, 흉을 보거나 놀리기도 하며,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즐거워하는 일도 있지만 벗들과 만나 보내는 그런 즐거움 또한 여행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여행 가방을 싸며 가방 안에 넣었던 새로 나온 소설은 차 안에서 40여 쪽을 읽다가 접은 채로 있지만 새로 읽기 시작했으니 오래지 않아 다 읽게 되리란 기대로 설렙니다. 소설 속에서 잃어버린 엄마는 찾을까 못 찾을까 궁금해지지만, 그 생각은 머릿속에 넣어두고 친구들과 세상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삶을 새롭게 충전하는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찾는 삶의 의미와 행복도 멀리 있지 않고 나날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87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386
385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風文 2015.01.14 7045
384 가장 작은 소리, 더 작은 소리 바람의종 2012.10.30 8213
383 가장 쉬운 불면증 치유법 風文 2023.12.05 689
382 가장 생각하기 좋은 속도 風文 2022.02.08 1194
381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잘 안다 바람의종 2009.07.01 5347
380 가장 빛나는 별 바람의종 2012.07.23 6905
379 가장 놀라운 기적 風文 2024.05.10 432
378 가장 강한 힘 바람의종 2010.01.23 5515
377 가을이 떠나려합니다 風文 2014.12.03 8284
376 가을엽서 - 도종환 (73) 바람의종 2008.09.24 7289
375 가을 오후 - 도종환 (94) 바람의종 2008.11.15 8315
374 가슴이 뛰는 삶 윤영환 2011.01.28 4429
373 가슴으로 답하라 윤안젤로 2013.05.13 7987
372 가슴에 핀 꽃 風文 2014.12.24 9447
371 가슴에 불이 붙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바람의종 2011.01.31 4540
370 가슴높이 바람의종 2009.11.15 4783
369 가슴높이 바람의종 2011.07.28 4548
368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風文 2023.04.18 787
367 가볍고 무른 오동나무 風文 2021.09.10 780
366 가벼우면 흔들린다 風文 2015.07.02 6110
365 가만히 안아줍니다 風文 2021.10.09 722
364 가난해서 춤을 추었다 風文 2014.12.04 8461
363 가난한 집 아이들 바람의종 2009.03.01 7219
362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 윤안젤로 2013.04.11 10514
361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風文 2019.08.07 86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