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744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따뜻한 상징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어깨가 시려옵니다. 창문 쪽에서 한기가 한 호흡씩 밀려오는 게 보입니다. 커튼을 쳤지만 그것만으로 냉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게 방안에서도 느껴집니다. 난로에 불을 피울까 하다가 오늘은 이대로 견뎌보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추위가 몰려올 걸 생각하니 땔나무를 좀 아껴야겠습니다. 오늘 같은 겨울밤, 시린 어깨를 모포로 감싸며 견뎌야 할 시련의 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깊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정진규 시인도「따뜻한 상징」이란 시에서 춥게 잠들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렇게 눈물겨워 합니다. 발이 시려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겨울밤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고 합니다.


















 


나도 춥고 배고프던 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집집마다 쌀 두어 됫박씩 걷어 마루에 놓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루에 놓여 있던 하이얀 쌀자루를 생각합니다. 내게 그 쌀자루는 언제나 따뜻한 상징입니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오늘도 역시 따뜻한 상징이 필요합니다. 그 상징은 진정으로 아픔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상징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06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496
385 서두르지 않는다 風文 2023.10.11 889
384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 風文 2020.05.08 888
383 행복은 우리에게 있다 風文 2019.08.14 887
382 '억울하다'라는 말 風文 2023.01.17 887
381 창조력 風文 2019.08.17 886
380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7.1. 風文 2023.11.14 886
379 '정말 이게 꼭 필요한가?' 風文 2020.05.05 885
378 바늘구멍 風文 2020.06.18 885
377 몽당 빗자루 風文 2022.01.26 885
376 자기 암시를 하라 風文 2022.09.07 885
375 호기심 천국 風文 2022.12.19 884
374 은혜를 갚는다는 것 風文 2019.06.19 883
373 '사랑을 느끼는' 황홀한 상태 風文 2023.02.01 883
372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9.3.미트라 風文 2023.11.24 883
371 긍정적 목표가 먼저다 風文 2020.05.02 882
370 요술을 부리는 수통 風文 2020.06.10 882
369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21. 주기 風文 2020.06.21 882
368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 風文 2021.11.10 881
367 엄마를 닮아가는 딸 風文 2022.04.28 881
366 똑같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요청하라 風文 2022.10.07 881
365 우주심(宇宙心)과 에고(Ego) 風文 2023.07.27 881
364 쾌감 호르몬 風文 2023.10.11 881
363 '어른 아이' 모차르트 風文 2023.11.21 880
362 사는 맛, 죽을 맛 風文 2019.08.24 879
361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風文 2022.02.24 87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