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242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1216221447&Section=04
바다로 가는 강물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간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입니다. 옛말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이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맑다는 말은 때 묻지 않고 물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때 묻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은 결국 그 주위에 이웃이 모이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부처도 중생 속에 있을 때 진정한 부처라 했습니다.
남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여럿 속에 있을 때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아야말로 진정으로 튼튼한 자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모습을 보세요. 맨 처음 강물은 산골짝 맑은 이슬방울에서 시작합니다. 깨끗한 물들과 만나면서 맑은 마음으로 먼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폭이 넓어지고 물이 불어나면서 깨끗하지 않은 물과도 섞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면서는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더럽혀질 대로 더러워진 물이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 썩은 물들이 섞여 들어오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강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강의 생명력은 매순간마다 스스로 거듭 새로워지며 먼 곳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데 있습니다. 가면서 맑아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명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정 작용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끝내 먼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비록 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온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뗄 때만큼 맑지는 못하더라도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섞여 흘러가면서도 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우리도 그런 삶의 자세를 바다로 가는 강물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849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7760
2701 이해인 수녀님께 - 도종환 (54) 바람의종 2008.08.09 8556
2700 스스로 이겨내기 윤안젤로 2013.03.11 8551
2699 행복한 사람 - 도종환 (50) 바람의종 2008.08.01 8551
2698 오늘 끝내자 윤영환 2013.03.14 8537
2697 좋은 생각 바람의종 2013.01.07 8534
2696 행복한 농사꾼을 바라보며 바람의종 2008.04.22 8527
2695 오늘을 위한 아침 5분의 명상 바람의종 2008.03.20 8522
2694 구수한 된장찌개 바람의종 2012.08.13 8522
2693 게으름 風文 2014.12.18 8499
2692 이상주의자의 길 - 도종환 (49) 바람의종 2008.07.28 8490
2691 낙천성 風文 2014.12.01 8487
2690 멧돼지와 집돼지 - 도종환 (56) 바람의종 2008.08.13 8483
2689 한 번의 포옹 風文 2014.12.20 8481
2688 젊음의 특권 바람의종 2009.04.13 8480
2687 암을 이기는 법 윤안젤로 2013.03.25 8480
2686 기품 바람의종 2008.11.26 8479
2685 '자기 스타일' 바람의종 2012.11.27 8478
2684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477
2683 오늘의 위기상황은... 윤안젤로 2013.05.13 8474
2682 김성희의 페이지 - 가을가뭄 바람의종 2008.10.30 8472
2681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 도종화 (69) 바람의종 2008.09.18 8468
2680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은 있는가?" 바람의종 2009.04.03 8459
2679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9 8454
2678 참는다는 것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28 844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