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739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혹독하게 견뎌내야 하는 계절입니다. 짐승과 파충류들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가을이면 잔뜩 먹어 몸을 불립니다. 사람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겨울준비를 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곶감 두어 줄 깎아 매달아 놓고
시래기 주워다 두어 줄 걸고
나무도 소복이 처마 밑에 닿았다

초여름 담근 매실주 있는데
올 겨울 그리운 친구 오는 날
눈 장설로 내렸으면 좋겠다

---이재금 「산중일기 3 - 겨울준비」

겨울준비 치고는 참 조촐합니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감 깎아서 곶감을 만들어 추녀 밑에 두어 줄 매달아 놓은 것, 배추나 무를 거두어 간 밭에서 주어다 걸어 놓은 시래기 두어 줄, 그리고 나무 해다가 처마 밑에 소복이 쌓아 놓은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많이도 아니고 두어 줄 정도의 먹을 것과 벽 한쪽에 쌓아 놓았을 땔나무, 이 정도 마련했으면 겨울 준비는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초여름에 매화나무 열매 따다가 담근 매실주가 한 대여섯 달 익었으니 올 겨울 그리운 친구가 찾아와 그 친구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장설로 내려 다른 일 아무 것도 못하고 술이나 진종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살이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겠다는 것이지요. 욕심을 내려놓는 삶을 선택해야 맛볼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 삶이 주어진 가난이었는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빈곤이었는지, 자발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자는 보여줍니다. 나도 그 언저리 어디쯤에 끼어 앉아 매실주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89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287
335 불가능에 도전하라 風文 2022.10.17 822
334 약속을 요구하라 주인장 2022.10.20 765
333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화성인을 자처하라 주인장 2022.10.21 855
332 대머리도 머리를 말린다? - 존 페카넨 風文 2022.10.24 874
331 지도자를 움직인 편지 한통 風文 2022.10.25 1281
330 융자를 요청하라 - 레스 휴윗, 액티버 캐나다 세미나의 창설자 風文 2022.10.27 959
329 전국에 요청하라 風文 2022.10.28 845
328 진면목을 요청하라 - 헬리스 브릿지 風文 2022.11.09 837
327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6. 좋은 질문을 하라 風文 2022.11.10 851
326 자신에게 해답을 구하라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중에서 風文 2022.11.18 1000
325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風文 2022.11.22 1421
324 당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4 - 짐 캐츠카트 風文 2022.11.23 811
323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風文 2022.11.28 912
322 신에게 요청하라 1, 2 風文 2022.11.30 776
321 신에게 요청하라 3, 4, 5 風文 2022.12.01 777
320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風文 2022.12.02 1048
319 적재적소의 질문 風文 2022.12.05 869
318 말보다 빠른 노루가 잡히는 이유 風文 2022.12.06 1051
317 파워냅(Power Nap) 風文 2022.12.07 1027
316 화가 날 때는 風文 2022.12.08 985
315 나이가 든다는 것 風文 2022.12.09 985
314 삶을 풀어나갈 기회 風文 2022.12.10 794
313 사랑하는 사람은 안 따진다 風文 2022.12.12 885
312 '우리 팀'의 힘 風文 2022.12.13 1277
311 차 맛이 좋아요 風文 2022.12.14 8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