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8 17:25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조회 수 6805 추천 수 18 댓글 0
곶감 두어 줄 깎아 매달아 놓고
시래기 주워다 두어 줄 걸고
나무도 소복이 처마 밑에 닿았다
초여름 담근 매실주 있는데
올 겨울 그리운 친구 오는 날
눈 장설로 내렸으면 좋겠다
---이재금 「산중일기 3 - 겨울준비」
겨울준비 치고는 참 조촐합니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감 깎아서 곶감을 만들어 추녀 밑에 두어 줄 매달아 놓은 것, 배추나 무를 거두어 간 밭에서 주어다 걸어 놓은 시래기 두어 줄, 그리고 나무 해다가 처마 밑에 소복이 쌓아 놓은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많이도 아니고 두어 줄 정도의 먹을 것과 벽 한쪽에 쌓아 놓았을 땔나무, 이 정도 마련했으면 겨울 준비는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초여름에 매화나무 열매 따다가 담근 매실주가 한 대여섯 달 익었으니 올 겨울 그리운 친구가 찾아와 그 친구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장설로 내려 다른 일 아무 것도 못하고 술이나 진종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살이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겠다는 것이지요. 욕심을 내려놓는 삶을 선택해야 맛볼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 삶이 주어진 가난이었는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빈곤이었는지, 자발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자는 보여줍니다. 나도 그 언저리 어디쯤에 끼어 앉아 매실주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6827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6314 |
2160 | 영혼의 친구 | 바람의종 | 2008.11.18 | 6817 |
2159 | 레볼루션 | 風文 | 2014.12.13 | 6817 |
2158 | 스스로 자기를 아프게 하지 말라 | 바람의종 | 2007.06.07 | 6812 |
2157 | 온화한 힘 - 도종환 | 바람의종 | 2008.07.21 | 6805 |
» |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 바람의종 | 2008.12.08 | 6805 |
2155 | 태풍이 오면 | 바람의종 | 2009.04.30 | 6799 |
2154 | 자식과의 거리 | 風文 | 2016.12.12 | 6793 |
2153 |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 도종환 (132) | 바람의종 | 2009.02.18 | 6790 |
2152 | 은행나무 길 - 도종환 (86) | 바람의종 | 2008.10.29 | 6784 |
2151 | 그대의 삶은... | 바람의종 | 2008.11.11 | 6784 |
2150 | 문학대중화란 - 안도현 | 바람의종 | 2008.03.15 | 6783 |
2149 | 겨울기도 - 도종환 (103) | 바람의종 | 2008.12.06 | 6778 |
2148 | 교환의 비밀: 가난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 바람의종 | 2008.04.22 | 6776 |
2147 | 「진수성찬」(시인 이상섭) | 바람의종 | 2009.08.11 | 6774 |
2146 | 새로운 곳으로 떠나자 | 바람의종 | 2012.12.31 | 6774 |
2145 | 숫사자의 3천번 짝짓기 | 바람의종 | 2009.04.30 | 6771 |
2144 | 용서 | 바람의종 | 2008.07.19 | 6766 |
2143 | 「부모님께 큰절 하고」(소설가 정미경) | 바람의종 | 2009.06.10 | 6764 |
2142 | 좋아하는 일을 하자 | 바람의종 | 2010.03.27 | 6764 |
2141 |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 바람의종 | 2008.10.10 | 6759 |
2140 | 용서 | 風文 | 2014.12.02 | 6751 |
2139 |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도종환 (91) | 바람의종 | 2008.11.11 | 6745 |
2138 | 두려움 | 風文 | 2015.02.15 | 6745 |
2137 | 인생의 빛과 어둠이 녹아든 나이 | 바람의종 | 2007.12.27 | 6744 |
2136 | 평화의 장소 | 바람의종 | 2012.12.27 | 6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