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624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혹독하게 견뎌내야 하는 계절입니다. 짐승과 파충류들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가을이면 잔뜩 먹어 몸을 불립니다. 사람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겨울준비를 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곶감 두어 줄 깎아 매달아 놓고
시래기 주워다 두어 줄 걸고
나무도 소복이 처마 밑에 닿았다

초여름 담근 매실주 있는데
올 겨울 그리운 친구 오는 날
눈 장설로 내렸으면 좋겠다

---이재금 「산중일기 3 - 겨울준비」

겨울준비 치고는 참 조촐합니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감 깎아서 곶감을 만들어 추녀 밑에 두어 줄 매달아 놓은 것, 배추나 무를 거두어 간 밭에서 주어다 걸어 놓은 시래기 두어 줄, 그리고 나무 해다가 처마 밑에 소복이 쌓아 놓은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많이도 아니고 두어 줄 정도의 먹을 것과 벽 한쪽에 쌓아 놓았을 땔나무, 이 정도 마련했으면 겨울 준비는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초여름에 매화나무 열매 따다가 담근 매실주가 한 대여섯 달 익었으니 올 겨울 그리운 친구가 찾아와 그 친구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장설로 내려 다른 일 아무 것도 못하고 술이나 진종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살이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겠다는 것이지요. 욕심을 내려놓는 삶을 선택해야 맛볼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 삶이 주어진 가난이었는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빈곤이었는지, 자발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자는 보여줍니다. 나도 그 언저리 어디쯤에 끼어 앉아 매실주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155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1026
456 결단의 성패 바람의종 2009.06.29 5556
455 격려 바람의종 2010.04.07 2593
454 겨울나무 바람의종 2011.02.01 3557
453 겨울기도 - 도종환 (103) 바람의종 2008.12.06 6623
»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바람의종 2008.12.08 6624
451 겨울 사랑 風文 2014.12.17 8328
450 겨울 나무 - 도종환 (130) 바람의종 2009.02.14 9299
449 게으름 風文 2014.12.18 8570
448 겁먹지 말아라 風文 2014.12.04 8778
447 검열 받은 편지 바람의종 2010.03.26 5014
446 검도의 가르침 風文 2022.02.01 664
445 걸음마 風文 2022.12.22 650
444 걸음 바람의종 2010.08.30 4267
443 걷기 자세 바람의종 2010.09.29 3371
442 건성으로 보지 말라 風文 2022.01.29 645
441 건설적인 생각 바람의종 2011.12.17 5383
440 건강해지는 방법 風文 2019.09.05 812
439 건강한 자기애愛 風文 2021.09.10 484
438 건강한 공동체 바람의종 2012.05.14 7816
437 건강이 보인다 바람의종 2010.07.21 3433
436 건강에 위기가 왔을 때 風文 2015.02.09 7429
435 건강과 행복 風文 2015.02.14 6733
434 걱정하고 계시나요? 윤안젤로 2013.06.05 10603
433 걱정말고 부탁하세요 바람의종 2010.02.10 4357
432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風文 2022.09.16 7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