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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혹독하게 견뎌내야 하는 계절입니다. 짐승과 파충류들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가을이면 잔뜩 먹어 몸을 불립니다. 사람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겨울준비를 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곶감 두어 줄 깎아 매달아 놓고
시래기 주워다 두어 줄 걸고
나무도 소복이 처마 밑에 닿았다

초여름 담근 매실주 있는데
올 겨울 그리운 친구 오는 날
눈 장설로 내렸으면 좋겠다

---이재금 「산중일기 3 - 겨울준비」

겨울준비 치고는 참 조촐합니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감 깎아서 곶감을 만들어 추녀 밑에 두어 줄 매달아 놓은 것, 배추나 무를 거두어 간 밭에서 주어다 걸어 놓은 시래기 두어 줄, 그리고 나무 해다가 처마 밑에 소복이 쌓아 놓은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많이도 아니고 두어 줄 정도의 먹을 것과 벽 한쪽에 쌓아 놓았을 땔나무, 이 정도 마련했으면 겨울 준비는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초여름에 매화나무 열매 따다가 담근 매실주가 한 대여섯 달 익었으니 올 겨울 그리운 친구가 찾아와 그 친구와 술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장설로 내려 다른 일 아무 것도 못하고 술이나 진종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살이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겠다는 것이지요. 욕심을 내려놓는 삶을 선택해야 맛볼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 삶이 주어진 가난이었는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빈곤이었는지, 자발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자는 보여줍니다. 나도 그 언저리 어디쯤에 끼어 앉아 매실주 한 잔 얻어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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