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474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대 거기 있다고 자기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지 마세요.
개울물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강물의 핏줄이 됩니다. 그대도 거기 있음으로 해서 바다같이 크고 웅장한 것의 실핏줄을 이루고 빈틈없는 그물코가 됩니다. 그대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물코는 한 곳만 끊겨 나가도 그리로 모든 것이 빠져 달아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크고 완전한 것이 존재하는 겁니다. 거대한 바닷물도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이룬 것입니다. 여윈 개울물 한줄기야말로 강물의 근원이요 모태인 것입니다. 그대도 그처럼 근원이요 출발입니다.

그대 늘 거기서 시작하세요. 그대는 크고 거대한 것의 시작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힘겨워하지 마세요.
과꽃도 해바라기도 거기 그렇게 있지만 초라한 뜨락을 꽃밭으로 바꾸고 퇴락한 돌담을 정겨운 공간으로 바꿉니다. 그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소박한 모습으로 서서 자기들이 있는 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을 꽃밭으로 바꾸는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꽃으로 있습니다. 그대 힘겨워하지 마세요. 그대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힘겨움을 이기지 않고 아름답게 거듭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땡볕과 어둠과 비바람을 똑같이 견딥니다. 마을 어귀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을 채송화도 분꽃도 똑같이 겪으며 꽃을 피웁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외로워하지 마세요.
살아 있는 것들 중에 외롭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들판의 미루나무는 늘 들판 한 가운데서 외롭고 산비탈의 백양나무는 산비탈에서 외롭습니다. 노루는 노루대로 제 동굴에서 외롭게 밤을 지새고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외롭게 잠을 청합니다.

여럿이 어울려 흔들리는 풀들도 다 저 혼자씩은 외롭습니다. 제 목숨과 함께 쓸쓸합니다. 모두들 혼자 이 세상에 나와 혼자 먼길을 갑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울 때도 혼자 저 스스로를 다독이고 혼자 결정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외로운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외롭습니다. 지금 그대 곁에 있는 사람도 그대만큼 외롭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89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286
585 눈을 감고 본다 風文 2015.03.11 7582
584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592
583 '나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 바람의종 2012.07.27 7596
582 과식 바람의종 2013.01.21 7600
581 아프리카 두더지 風文 2014.12.16 7600
580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죽다 바람의종 2008.10.31 7602
579 역설의 진리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7.21 7603
578 마음의 지도 風文 2014.11.25 7604
577 눈은 마음의 창 바람의종 2007.09.06 7610
576 사랑에 이유를 달지 말라 風文 2014.12.25 7627
575 '명품 사람' 風文 2015.04.28 7628
574 좋은 디자인일수록... 風文 2014.12.13 7632
573 나는 걸었다 윤안젤로 2013.04.19 7633
572 3,4 킬로미터 활주로 바람의종 2012.11.21 7638
571 진짜 그대와 만날 때... 風文 2015.04.20 7638
570 「비명 소리」(시인 길상호) 바람의종 2009.07.15 7640
569 매뉴얼 風文 2015.01.14 7641
568 그 아이는 외로울 것이며... 風文 2014.12.30 7650
567 세상을 사는 두 가지의 삶 바람의종 2008.03.14 7660
566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요" 바람의종 2009.07.06 7662
565 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 바람의종 2012.06.18 7662
564 작은 상처, 큰 상처 風文 2015.08.09 7668
563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바람의종 2009.06.17 7670
562 진정한 감사 風文 2014.12.16 7678
561 지하철에서 노인을 만나면 무조건 양보하라 바람의종 2008.05.22 767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