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14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나리꽃은 거기 있어도 여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게 꽃핍니까. 잡풀 우거지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주홍빛 꽃 한 송이 거기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비탈지고 그늘진 그곳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가 있다 해도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궁벽지고 험한 그곳에 사람 사는 정겨움이 감돈다면 그대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겨우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대 거기 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낮은 곳에 있어도 구절초는 가을이 되면 얼마나 곱게 핍니까. 외진 골짜기나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도 함께 모여 이룬 가을 풍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만듭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비천한 자리에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든든한 자태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찬바람 부는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든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가장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성벽의 맨 밑에 있는 돌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외딴 늪도 자기 스스로를 깊이 사랑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에 늪 하나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기뻐하며 목숨을 이어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 나비, 반딧불이들이 기뻐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의 환호성이 늪 근처에서 울려나오는지 아십니까. 지나가던 철새들이 내려와 날개를 쉬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십니까.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마세요. 그대는 좋은 점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세요. 아직도 당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부족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일이 당신의 생애에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00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390
1085 그대와의 인연 바람의종 2010.07.13 3453
108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바람의종 2011.02.07 3452
1083 '더하기 1초' 바람의종 2010.07.19 3447
1082 자존감 바람의종 2011.02.01 3447
1081 섬광처럼 번개처럼 바람의종 2011.08.25 3444
1080 한계 바람의종 2010.06.19 3443
1079 무보수 바람의종 2011.07.20 3438
1078 아직도 망설이고 계신가요? 바람의종 2010.05.15 3436
1077 우리는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바람의종 2010.11.16 3436
1076 당신의 삶에 리듬이 있는가? 바람의종 2012.04.19 3432
1075 자연을 통해... 바람의종 2010.07.06 3428
1074 '어쩌면 좋아' 바람의종 2010.04.17 3426
1073 바람의종 2011.02.01 3425
1072 나만의 '깊은산속 옹달샘' 바람의종 2010.08.27 3422
1071 밧줄 바람의종 2011.04.22 3418
1070 단순하게 사는 일 바람의종 2010.09.13 3404
1069 자기 생각, 자기 방식, 자기 관점 바람의종 2010.07.20 3402
1068 '믿어주는' 칭찬 바람의종 2010.07.17 3392
1067 걷기 자세 바람의종 2010.09.29 3390
1066 일에 전념하라 바람의종 2010.07.17 3385
1065 반려자 바람의종 2011.04.19 3351
1064 영혼의 우물 바람의종 2010.06.08 3346
1063 나이 드니까 바람의종 2011.01.27 3345
1062 스마일 노인 바람의종 2011.10.25 3344
1061 예술과 사랑 風文 2017.11.29 334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