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68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나리꽃은 거기 있어도 여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게 꽃핍니까. 잡풀 우거지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주홍빛 꽃 한 송이 거기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비탈지고 그늘진 그곳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가 있다 해도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궁벽지고 험한 그곳에 사람 사는 정겨움이 감돈다면 그대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겨우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대 거기 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낮은 곳에 있어도 구절초는 가을이 되면 얼마나 곱게 핍니까. 외진 골짜기나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도 함께 모여 이룬 가을 풍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만듭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비천한 자리에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든든한 자태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찬바람 부는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든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가장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성벽의 맨 밑에 있는 돌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외딴 늪도 자기 스스로를 깊이 사랑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에 늪 하나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기뻐하며 목숨을 이어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 나비, 반딧불이들이 기뻐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의 환호성이 늪 근처에서 울려나오는지 아십니까. 지나가던 철새들이 내려와 날개를 쉬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십니까.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마세요. 그대는 좋은 점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세요. 아직도 당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부족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일이 당신의 생애에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25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660
2735 오감 너머의 영감 風文 2023.06.28 854
2734 지혜를 얻는 3가지 방법 風文 2019.08.26 855
2733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風文 2022.02.04 855
2732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0. 가치 風文 2020.06.05 857
2731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습관 風文 2022.01.30 857
2730 우리 삶이 올림픽이라면 風文 2023.02.25 857
2729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風文 2019.08.13 858
2728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風文 2023.04.28 858
2727 두려움의 마귀 風文 2023.07.30 858
2726 24시간 스트레스 風文 2023.08.05 858
2725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요청하라 風文 2022.09.18 859
2724 자기주도적인 삶 風文 2020.06.06 860
2723 괴로워하고 있나요? 風文 2019.08.24 861
2722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風文 2022.01.09 861
2721 인재 발탁 風文 2022.02.13 862
2720 빈둥거림의 미학 風文 2022.06.01 862
2719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風文 2023.08.24 862
2718 실수에 대한 태도 風文 2023.03.08 863
2717 자기 존엄 風文 2023.07.29 863
2716 자기 몸이 건강하면 風文 2019.08.26 865
2715 다락방의 추억 風文 2023.03.25 865
2714 잇몸에서 피가 나왔다? 風文 2022.02.24 866
2713 단 하나의 차이 風文 2023.02.18 866
2712 끈질긴 요청이 가져온 성공 - 패티 오브리 風文 2022.08.22 867
2711 밥은 먹고 다니니? 風文 2020.07.02 86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