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31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나리꽃은 거기 있어도 여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게 꽃핍니까. 잡풀 우거지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주홍빛 꽃 한 송이 거기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비탈지고 그늘진 그곳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가 있다 해도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궁벽지고 험한 그곳에 사람 사는 정겨움이 감돈다면 그대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겨우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대 거기 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낮은 곳에 있어도 구절초는 가을이 되면 얼마나 곱게 핍니까. 외진 골짜기나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도 함께 모여 이룬 가을 풍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만듭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비천한 자리에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든든한 자태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찬바람 부는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든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가장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성벽의 맨 밑에 있는 돌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외딴 늪도 자기 스스로를 깊이 사랑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에 늪 하나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기뻐하며 목숨을 이어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 나비, 반딧불이들이 기뻐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의 환호성이 늪 근처에서 울려나오는지 아십니까. 지나가던 철새들이 내려와 날개를 쉬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십니까.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마세요. 그대는 좋은 점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세요. 아직도 당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부족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일이 당신의 생애에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14483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26Sep
    by 바람의종
    2009/09/26 by 바람의종
    Views 5287 

    그 자리에서 머뭇거릴 순 없다

  4. 그가 부러웠다

  5. No Image 09Jul
    by 바람의종
    2009/07/09 by 바람의종
    Views 5589 

    그가 부러웠다

  6. No Image 13Jun
    by 바람의종
    2010/06/13 by 바람의종
    Views 5781 

    그건 내 잘못이야

  7. No Image 21Aug
    by 바람의종
    2012/08/21 by 바람의종
    Views 7254 

    그것은 사랑이다

  8. No Image 19Dec
    by 바람의종
    2010/12/19 by 바람의종
    Views 3791 

    그날 마음을 정했다

  9. No Image 21Aug
    by 風文
    2019/08/21 by 風文
    Views 685 

    그냥 느껴라

  10. No Image 09Mar
    by 風文
    2023/03/09 by 風文
    Views 1244 

    그냥 들어주자

  11. No Image 12Nov
    by 風文
    2014/11/12 by 風文
    Views 10984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들 때

  12. No Image 23Apr
    by 바람의종
    2012/04/23 by 바람의종
    Views 6497 

    그냥이라는 말

  13. No Image 04Feb
    by 風文
    2022/02/04 by 風文
    Views 745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14. No Image 29Nov
    by 바람의종
    2008/11/29 by 바람의종
    Views 6331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1) - 도종환 (100)

  15. No Image 06Dec
    by 바람의종
    2008/12/06 by 바람의종
    Views 6510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2) - 도종환

  16. No Image 30Jul
    by 風文
    2015/07/30 by 風文
    Views 6592 

    그대 목소리를 듣는다

  17. No Image 09Aug
    by 風文
    2015/08/09 by 風文
    Views 8950 

    그대 생각날 때면

  18. No Image 20Oct
    by 바람의종
    2008/10/20 by 바람의종
    Views 6142 

    그대 이제 꿈을 말할 때가 아닌가

  19. No Image 29Aug
    by 風文
    2019/08/29 by 風文
    Views 854 

    그대 이제 말하려는가

  20. No Image 16Oct
    by 風文
    2023/10/16 by 風文
    Views 759 

    그대, 지금 힘든가?

  21. No Image 03Jul
    by 風文
    2015/07/03 by 風文
    Views 6248 

    그대나 나나

  22. No Image 05Jan
    by 風文
    2015/01/05 by 風文
    Views 6011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23. No Image 28Dec
    by 風文
    2014/12/28 by 風文
    Views 8901 

    그대는 황제!

  24. No Image 18Mar
    by 바람의종
    2009/03/18 by 바람의종
    Views 5378 

    그대도 나처럼

  25. No Image 16Aug
    by 風文
    2019/08/16 by 風文
    Views 776 

    그대를 만난 뒤...

  26. No Image 17Dec
    by 바람의종
    2012/12/17 by 바람의종
    Views 9068 

    그대에게 의미있는 일

  27. No Image 29Sep
    by 바람의종
    2008/09/29 by 바람의종
    Views 6957 

    그대와의 인연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