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547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십일월도 하순 해 지고 날 점점 어두워질 때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십일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잎이란 잎은 다 집니다. 나뭇잎을 다 잃고 비탈에 선 나무들도 우리도 마음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앉아 바라보면 비탈과 능선에 선 나무들이 이때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잎이 다 지고나면 나무들은 알몸의 빈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 세세한 잔가지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그리는 그림이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아니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찬바람 불고 눈발이 몰아칠 터인데,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절한 날들만이 남았는데 그 모습이 그림입니다. 가진 것 다 잃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도 그것이 탁 트인 그림이 되는 십일월 하순의 풍경을 보며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삶을 어떻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7217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763
1885 아름다운 대화법 바람의종 2011.04.25 3622
1884 아름다운 길(道) 風文 2015.07.02 6196
1883 아름다운 경쟁 바람의종 2009.09.29 4708
1882 아름다운 '공상가' 바람의종 2011.08.04 4165
1881 아르테미스, 칼리스토, 니오베 風文 2023.06.28 786
1880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다 風文 2013.08.09 12422
1879 아들의 똥 風文 2014.10.06 11656
1878 아들아, 생긴 것만 닮으면 뭐하냐? 바람의종 2011.04.19 4445
1877 아는 만큼 보인다? 風文 2014.08.06 9073
1876 아는 것부터, 쉬운 것부터 바람의종 2008.11.13 5708
1875 아내의 비밀 서랍 風文 2021.10.28 896
1874 아남 카라 바람의종 2008.12.30 6238
1873 아기의 눈으로 바라보기 風文 2023.02.22 840
1872 아기 예수의 구유 風文 2023.12.28 691
1871 아가페 사랑 바람의종 2011.04.25 4785
1870 아, 이 아픈 통증을 어찌 할까 바람의종 2012.09.13 5986
1869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요 (129) 바람의종 2009.02.12 4771
1868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 도종환 (84) 바람의종 2008.10.22 5436
1867 아, 어머니! 風文 2016.09.04 7252
1866 아, 그 느낌! 風文 2023.02.06 980
1865 씨줄과 날줄 風文 2014.12.25 8715
1864 씨익 웃자 바람의종 2011.05.13 4782
1863 씨익 웃자 風文 2015.06.03 4560
1862 씨앗 뿌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風文 2023.04.03 1059
1861 쓸모 없는 존재는 없다 바람의종 2010.07.10 245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