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45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십일월도 하순 해 지고 날 점점 어두워질 때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십일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잎이란 잎은 다 집니다. 나뭇잎을 다 잃고 비탈에 선 나무들도 우리도 마음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앉아 바라보면 비탈과 능선에 선 나무들이 이때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잎이 다 지고나면 나무들은 알몸의 빈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 세세한 잔가지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그리는 그림이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아니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찬바람 불고 눈발이 몰아칠 터인데,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절한 날들만이 남았는데 그 모습이 그림입니다. 가진 것 다 잃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도 그것이 탁 트인 그림이 되는 십일월 하순의 풍경을 보며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삶을 어떻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60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051
1010 젊어지는 식사 바람의종 2009.01.24 6406
1009 허송세월 風文 2016.12.13 6406
1008 혼자 있는 즐거움 風文 2014.12.07 6417
1007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風文 2014.12.22 6418
1006 왕과 여왕이라도 바람의종 2011.08.20 6422
1005 짧은 휴식, 원대한 꿈 바람의종 2011.08.05 6425
1004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바람의종 2008.10.17 6426
1003 만음(萬音)과 마음(魔音) 바람의종 2012.09.04 6427
1002 손끝 하나의 친밀함 風文 2014.12.08 6429
1001 기초, 기초, 기초 바람의종 2008.12.15 6430
1000 위대한 인연 윤안젤로 2013.03.05 6431
999 벌주기 바람의종 2008.07.16 6432
998 소설가의 눈 風文 2014.12.07 6435
997 빛을 발하라 바람의종 2012.11.30 6436
996 용서를 비는 기도 風文 2015.01.18 6436
995 세 가지 즐거움 - 도종환 (117) 바람의종 2009.01.23 6438
994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바람의종 2009.05.26 6439
993 조화 바람의종 2009.08.29 6439
992 사랑은 그 자리에 바람의종 2012.07.02 6440
991 내 젊은 날의 황금기 風文 2015.07.02 6445
990 '사랑한다' 바람의종 2009.03.14 6452
989 힘이 부치거든 더 힘든 일을 하라 바람의종 2010.05.31 6453
988 숨어 있는 능력 바람의종 2012.07.30 6454
» 십일월의 나무 - 도종환 (99) 바람의종 2008.11.26 6455
986 가치있는 삶, 아름다운 삶 風文 2015.06.28 64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