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6 12:59
십일월의 나무 - 도종환 (99)
조회 수 6503 추천 수 14 댓글 0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십일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잎이란 잎은 다 집니다. 나뭇잎을 다 잃고 비탈에 선 나무들도 우리도 마음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앉아 바라보면 비탈과 능선에 선 나무들이 이때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잎이 다 지고나면 나무들은 알몸의 빈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 세세한 잔가지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그리는 그림이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아니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찬바람 불고 눈발이 몰아칠 터인데,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절한 날들만이 남았는데 그 모습이 그림입니다. 가진 것 다 잃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도 그것이 탁 트인 그림이 되는 십일월 하순의 풍경을 보며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삶을 어떻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6172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5566 |
335 | 친구의 슬픔 | 風文 | 2013.07.09 | 12259 |
334 | 친구인가, 아닌가 | 바람의종 | 2008.11.11 | 7903 |
333 | 친밀한 사이 | 風文 | 2023.12.29 | 696 |
332 | 친밀함 | 바람의종 | 2009.10.27 | 5140 |
331 | 친애란 무엇일까요? | 바람의종 | 2007.10.24 | 11133 |
330 | 친절을 팝니다. | 風文 | 2020.06.16 | 1018 |
329 | 침묵과 용서 | 風文 | 2024.01.16 | 1314 |
328 | 침묵의 예술 | 바람의종 | 2008.11.21 | 7360 |
327 | 침묵하는 법 | 風文 | 2014.12.05 | 9731 |
326 | 침착을 되찾은 다음에 | 風文 | 2015.08.20 | 12967 |
325 | 칫솔처럼 | 風文 | 2014.11.25 | 8036 |
324 | 카오스, 에로스 | 風文 | 2023.05.12 | 1115 |
323 | 카지노자본주의 - 도종환 (98) | 바람의종 | 2008.11.26 | 6992 |
322 | 카프카의 이해: 먹기 질서와 의미 질서의 거부 | 바람의종 | 2008.08.19 | 9049 |
321 | 칼국수 | 風文 | 2014.12.08 | 9431 |
320 | 커피 한 잔의 행복 | 風文 | 2013.08.20 | 17578 |
319 | 코앞에 두고도... | 風文 | 2013.08.19 | 13974 |
318 | 콧노래 | 윤안젤로 | 2013.06.03 | 13989 |
317 | 콩 세 알을 심는 이유 | 바람의종 | 2009.09.18 | 6276 |
316 | 쾌감 호르몬 | 風文 | 2023.10.11 | 885 |
315 | 큐피드 화살 | 風文 | 2014.11.24 | 8416 |
314 | 큰 돌, 작은 돌 | 바람의종 | 2010.02.02 | 5700 |
313 | 큰 뜻 | 바람의종 | 2010.08.10 | 4529 |
312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3. 깨달음 | 風文 | 2020.05.29 | 1183 |
311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10. 가치 | 風文 | 2020.06.05 | 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