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133 추천 수 2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제 시 「깊은 가을」입니다. 나뭇잎들이 나무와 하나씩 하나씩 헤어지고 있습니다. 나뭇잎들이 깃들어 살던 산과 결별, 결별하고 있습니다. 나뭇잎을 하나씩 열씩 뽑아내며 바람은 고요히 떨고 있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돌아눕는 산의 구릿빛 등이 숙연합니다.

편안하고 낯익던 시간들과 결별하는 늦가을입니다. 헤어지면서 아름답게 불타는 가을입니다. 나무에게도 황혼이 찾아온 것입니다. 제 안에서 노을이 물들고 있는 것입니다.

결별하는 가을을 향해 나는 금관악기를 붑니다. 헤어지는 것들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종일 음악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이 소리 그대도 듣고 있는지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혼자 깊어가고 있을 그대도 온 산의 나무들이 헤어지며 내는 이 아프고 아름다운 소리 듣고 있는지요?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073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432
310 「똥개의 노래」(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6644
309 「니들이 고생이 많다」(소설가 김이은) 바람의종 2009.07.29 7573
308 「누구였을까」(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12 5308
307 「내 이름은 이기분」(소설가 김종광) 바람의종 2009.06.09 8497
306 「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바람의종 2009.07.10 7911
305 「긴장되고 웃음이 있고 재미있으며 좀 가려운」(소설가 성석제) 바람의종 2009.05.12 7831
304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171
303 「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0 8164
302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5.28 6131
301 「광진이 형」(시인 김두안) 바람의종 2009.07.06 7905
300 「개업식장이 헷갈려」(시인 이대의) 바람의종 2009.08.03 7831
299 「개는 어떻게 웃을까」(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8 11001
298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시인 차주일) 바람의종 2009.07.06 9300
297 「1997년도라는 해」(시인 김영남) 바람의종 2009.07.29 7978
296 「"에라이..."」(시인 장무령) 바람의종 2009.07.06 7784
295 ‘옵아트’ 앞에서 인간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바람의종 2007.08.15 46287
294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바람의종 2008.09.25 9768
293 solomoon 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17대 대선 특별판) 바람의종 2007.12.20 8255
292 Love is... 風磬 2006.02.05 18104
291 Gustav Klimt and the adagietto of the Mahler 5th symphony 바람의종 2008.03.27 14035
290 GOD 바람의종 2011.08.07 3144
289 AI 챗지피티ChatGPT가 갖지 못한 것 風文 2024.02.08 637
288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582
287 9. 아테나 風文 2023.10.18 705
286 80세 노교수의 건강 비결 두 가지 風文 2024.03.27 6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