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402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허균의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 통곡헌(慟哭軒)이란 이름의 편액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세상에는 즐길 일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이냐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은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언제나 곡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말하자면 시대의 비천함과 세태의 천박함을 보면서 통곡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저항의 마음을 편액에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과 불화하며 맞서고자 하는 사연을 듣고 허균은 조카를 비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들어가며, 친구들끼리 등을 돌리고 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배신행위는 길이 갈라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허균은 타락한 한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런 허균이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정치 사회 상황을 보면 똑같이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부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 가난한 농민들을 등치는 뻔뻔한 행정,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는 위험한 발상, 근본을 잊은 채 경쟁의 채찍만을 휘두르는 교육, 약자들에게는 추상같고 부자들에게는 너그럽게 적용되는 법률을 보면서 허균 또한 '통곡의 집'이란 편액을 써서 집집마다 나누어 주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981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385
2810 무엇이 소중한가 - 도종환 (75) 바람의종 2008.09.30 6530
2809 의심과 미움을 버리라 바람의종 2008.09.30 6999
2808 바로 지금 바람의종 2008.10.01 5993
2807 바다로 가는 강물 - 도종환 (76) 바람의종 2008.10.04 5596
2806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바람의종 2008.10.04 7457
2805 여백 - 도종환 (77) 바람의종 2008.10.07 11685
2804 각각의 음이 모여 바람의종 2008.10.07 7876
2803 슬픔이 없는 곳 바람의종 2008.10.07 6542
2802 들국화 한 송이 - 도종환 (78) 바람의종 2008.10.09 9194
2801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바람의종 2008.10.10 8139
2800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의종 2008.10.10 6661
2799 내면의 싸움 바람의종 2008.10.10 5822
2798 저녁 무렵 - 도종환 (79) 바람의종 2008.10.10 8425
2797 최고의 유산 바람의종 2008.10.11 6856
2796 성인(聖人)의 길 바람의종 2008.10.13 5710
2795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사랑 - 도종환 (80) 바람의종 2008.10.13 7889
2794 내 인생의 걸림돌들 바람의종 2008.10.17 7092
2793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바람의종 2008.10.17 6433
2792 약속 시간 15분 전 바람의종 2008.10.17 7387
2791 전혀 다른 세계 바람의종 2008.10.17 8349
2790 고적한 날 - 도종환 (81) 바람의종 2008.10.17 7189
2789 단풍 - 도종환 (82) 바람의종 2008.10.17 9507
2788 참 좋은 글 - 도종환 (83) 바람의종 2008.10.20 6926
2787 그대 이제 꿈을 말할 때가 아닌가 바람의종 2008.10.20 6147
2786 행복의 양(量) 바람의종 2008.10.20 669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