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5 14:53
가을 오후 - 도종환 (94)
조회 수 8188 추천 수 10 댓글 0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2807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2211 |
310 | 자기 마음부터 항복하라 | 風文 | 2019.06.21 | 695 |
309 | 아직은 '내 아이'다 | 風文 | 2019.08.26 | 695 |
308 | 불확실한, 우리 시대의 청춘들 | 風文 | 2019.08.28 | 695 |
307 |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 風文 | 2022.02.10 | 695 |
306 | 건성으로 보지 말라 | 風文 | 2022.01.29 | 694 |
305 | 지혜의 눈 | 風文 | 2022.12.31 | 694 |
304 | 마음을 담은 손편지 한 장 | 風文 | 2023.05.22 | 693 |
303 |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 風文 | 2019.08.13 | 692 |
302 | 이별의 이유 | 風文 | 2020.06.19 | 692 |
301 | 9. 아테나 | 風文 | 2023.10.18 | 692 |
300 | 감정이 바닥으로 치달을 땐 | 風文 | 2020.05.02 | 691 |
299 | 인생이라는 파도 | 風文 | 2022.01.29 | 691 |
298 | 삶을 풀어나갈 기회 | 風文 | 2022.12.10 | 691 |
297 | 새날 | 風文 | 2019.08.06 | 690 |
296 | '이틀 비 오면, 다음 날은 비가 안 와' | 風文 | 2022.01.29 | 690 |
295 | 흥미진진한 이야기 | 風文 | 2023.07.29 | 689 |
294 | 디오뉴소스 | 風文 | 2023.08.30 | 689 |
293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風文 | 2020.05.07 | 688 |
292 | 진실이 가려진 최악의 경우 | 風文 | 2022.02.08 | 688 |
291 | 자기 존엄 | 風文 | 2023.07.29 | 688 |
290 | 출근길 | 風文 | 2020.05.07 | 687 |
289 | 이타적 동기와 목표 | 風文 | 2022.02.05 | 687 |
288 |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風文 | 2019.08.07 | 686 |
287 | 정상에 오른 사람 | 風文 | 2019.08.16 | 686 |
286 | 그대 이제 말하려는가 | 風文 | 2019.08.29 | 6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