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5 14:53
가을 오후 - 도종환 (94)
조회 수 8329 추천 수 10 댓글 0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7263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6811 |
435 | 자기 비하 | 바람의종 | 2009.03.27 | 6687 |
434 | 사랑하다 헤어질 때 | 바람의종 | 2009.03.26 | 5594 |
433 | 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 도종환 (147) | 바람의종 | 2009.03.26 | 5256 |
432 | 사람이 항상 고상할 필요는 없다 | 바람의종 | 2009.03.25 | 5636 |
431 | 2도 변화 | 바람의종 | 2009.03.24 | 7469 |
430 | 고맙고 대견한 꽃 - 도종환 (146) | 바람의종 | 2009.03.23 | 7105 |
429 | 꽃소식 - 도종환 (145) | 바람의종 | 2009.03.23 | 6352 |
428 |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나가라 | 바람의종 | 2009.03.23 | 7121 |
427 | 당신이 희망입니다 | 바람의종 | 2009.03.23 | 4772 |
426 | 황홀한 끌림 | 바람의종 | 2009.03.23 | 7562 |
425 | 민들레 뿌리 - 도종환 (144) | 바람의종 | 2009.03.18 | 7788 |
424 | 그대도 나처럼 | 바람의종 | 2009.03.18 | 5509 |
423 | 대팻날을 갈아라 | 바람의종 | 2009.03.17 | 3956 |
422 | 꽃은 소리 없이 핍니다 - 도종환 (143) | 바람의종 | 2009.03.16 | 6317 |
421 | 책이 제일이다 | 바람의종 | 2009.03.16 | 7044 |
420 |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 바람의종 | 2009.03.14 | 7389 |
419 | '사랑한다' | 바람의종 | 2009.03.14 | 6548 |
418 | 정신적 지주 | 바람의종 | 2009.03.14 | 6633 |
417 | 없는 돈을 털어서 책을 사라 | 바람의종 | 2009.03.14 | 4671 |
416 | 비교 | 바람의종 | 2009.03.14 | 4851 |
415 | 마음의 평화 | 바람의종 | 2009.03.14 | 4759 |
414 | 통찰력 | 바람의종 | 2009.03.14 | 7762 |
413 | 그래도 사랑하라 | 바람의종 | 2009.03.14 | 5528 |
412 | 봄은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도종환 (142) | 바람의종 | 2009.03.14 | 5432 |
411 |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 도종환 (141) | 바람의종 | 2009.03.14 | 6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