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5 14:53
가을 오후 - 도종환 (94)
조회 수 8212 추천 수 10 댓글 0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3449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2808 |
2635 | 감동 호르몬과 악마 호르몬 | 바람의종 | 2009.11.15 | 4976 |
2634 | 감동과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 | 風文 | 2023.02.11 | 622 |
2633 | 감동하는 것도 재능이다 | 바람의종 | 2010.11.19 | 3760 |
2632 | 감미로운 고독 | 風文 | 2019.08.22 | 930 |
2631 | 감사 훈련 | 風文 | 2022.01.09 | 492 |
2630 | 감사 훈련 | 風文 | 2023.11.09 | 806 |
2629 | 감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바람의종 | 2011.04.01 | 4464 |
2628 |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는 법 | 風文 | 2021.10.09 | 597 |
2627 | 감정이 바닥으로 치달을 땐 | 風文 | 2020.05.02 | 752 |
2626 | 감춤과 은둔 | 風文 | 2015.08.20 | 10915 |
2625 | 감탄하는 것 | 바람의종 | 2012.04.11 | 5090 |
2624 | 갑자기 25m 자라는 대나무 | 바람의종 | 2012.01.13 | 6011 |
2623 |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30대 남성 | 風文 | 2020.05.22 | 890 |
2622 | 강해 보일 필요가 없다 | 바람의종 | 2009.04.25 | 5644 |
2621 |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 | 바람의 소리 | 2007.08.31 | 8836 |
2620 | 개 코의 놀라운 기능 | 바람의종 | 2008.05.08 | 8901 |
2619 | 개울과 바다 - 도종환 | 바람의종 | 2008.07.21 | 9383 |
2618 | 개울에 물이 흐르다 | 바람의종 | 2009.08.27 | 5363 |
2617 | 개척자 | 바람의종 | 2011.02.10 | 4166 |
2616 |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 바람의종 | 2009.09.21 | 5611 |
2615 | 갱년기 찬가 | 風文 | 2022.12.28 | 756 |
2614 | 거기에서 다시 일어서라 | 風文 | 2019.08.16 | 819 |
2613 | 거룩한 나무 | 風文 | 2021.09.04 | 444 |
2612 | 거울 선물 | 風文 | 2019.06.04 | 1045 |
2611 | 거울 속의 흰머리 여자 | 風文 | 2023.08.22 | 19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