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155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밖에 나갔다 산방으로 돌아오는 가을 오후. 나를 가장 먼저 아는 체 하는 건 쓸쓸함입니다.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고 서 있는 가을.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는 가을. 그 가을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으면 가을도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집니다.
  
  가을이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질 때마다 추녀 끝에선 풍경소리 들립니다. 그러나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는 압니다. 쓸쓸함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는지 압니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사람도 나무 한 그루도 내가 마주하고 선 고적한 시간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풀꽃 한 송이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인지 알게 합니다.
  
  나는 이 가을의 쓸쓸함과 만나는 시간이 좋습니다. 쓸쓸한 느낌, 쓸쓸한 맛, 쓸쓸한 풍경, 쓸쓸한 촉감이 좋습니다. 나도 쓸쓸해지고 가을도 쓸쓸해져서 가을도 나도 착해질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도종환/시인

  1. No Image notice by 風文 2023/02/04 by 風文
    Views 11605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2. 친구야 너는 아니

  3. No Image 17Jun
    by 바람의종
    2009/06/17 by 바람의종
    Views 7620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소설가 함정임)

  4. No Image 22Jun
    by 바람의종
    2009/06/22 by 바람의종
    Views 6733 

    「호세, 그라시아스!」(소설가 함정임)

  5. No Image 30Jun
    by 바람의종
    2009/06/30 by 바람의종
    Views 7101 

    「화들짝」(시인 김두안)

  6. No Image 16Aug
    by 윤영환
    2011/08/16 by 윤영환
    Views 4189 

  7. No Image 01Jul
    by 바람의종
    2008/07/01 by 바람의종
    Views 7811 

    雨中에 더욱 붉게 피는 꽃을 보며

  8. No Image 24Sep
    by 바람의종
    2010/09/24 by 바람의종
    Views 3051 

    가까운 사람

  9. No Image 09Mar
    by 바람의종
    2011/03/09 by 바람의종
    Views 2877 

    가까이 있는 것들

  10. No Image 24Dec
    by 風文
    2014/12/24 by 風文
    Views 7114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11. No Image 18Feb
    by 바람의종
    2009/02/18 by 바람의종
    Views 6584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 도종환 (132)

  12. No Image 17Oct
    by 바람의종
    2008/10/17 by 바람의종
    Views 6323 

    가끔은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13. No Image 07Aug
    by 風文
    2019/08/07 by 風文
    Views 655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14. No Image 11Apr
    by 윤안젤로
    2013/04/11 by 윤안젤로
    Views 10282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

  15. No Image 01Mar
    by 바람의종
    2009/03/01 by 바람의종
    Views 7042 

    가난한 집 아이들

  16. No Image 04Dec
    by 風文
    2014/12/04 by 風文
    Views 8356 

    가난해서 춤을 추었다

  17. No Image 09Oct
    by 風文
    2021/10/09 by 風文
    Views 527 

    가만히 안아줍니다

  18. No Image 02Jul
    by 風文
    2015/07/02 by 風文
    Views 5763 

    가벼우면 흔들린다

  19. No Image 10Sep
    by 風文
    2021/09/10 by 風文
    Views 458 

    가볍고 무른 오동나무

  20. No Image 18Apr
    by 風文
    2023/04/18 by 風文
    Views 532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21.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9/11/15 by 바람의종
    Views 4663 

    가슴높이

  22. No Image 28Jul
    by 바람의종
    2011/07/28 by 바람의종
    Views 4506 

    가슴높이

  23. No Image 31Jan
    by 바람의종
    2011/01/31 by 바람의종
    Views 4490 

    가슴에 불이 붙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24. No Image 24Dec
    by 風文
    2014/12/24 by 風文
    Views 9248 

    가슴에 핀 꽃

  25. No Image 13May
    by 윤안젤로
    2013/05/13 by 윤안젤로
    Views 7809 

    가슴으로 답하라

  26. No Image 28Jan
    by 윤영환
    2011/01/28 by 윤영환
    Views 4379 

    가슴이 뛰는 삶

  27. No Image 15Nov
    by 바람의종
    2008/11/15 by 바람의종
    Views 8155 

    가을 오후 - 도종환 (9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