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1 14:17
떨어지는 법 - 도종환 (90)
조회 수 6988 추천 수 12 댓글 0
떨어지는 법
오늘은 낙엽이 모두 떠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몸을 날립니다. 우수수 우수수 나무의 몸을 빠져 나와 땅에 내리는 낙엽을 보며 나는 그저 "아아아!" 하고 소리 칠 뿐입니다. 나뭇잎이 거의 다 빠져나간 은행나무 밑은 황금의 옷감을 바닥에 쫙 깔아 놓은 것 같습니다. 구릿빛과 고동색 점묘로 그려나가는 산의 능선 위에 가을햇살이 찬란하게 내립니다.
자연은 떨어져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투자한 재화의 가격이 떨어지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추락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미국의 작가 필립시먼스는 어느 날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균형을 잃고 고꾸라진 뒤 일어서지 못하는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육체의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는 육신을 지켜보며 필립시먼스는 낙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떨어지는 것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떨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내버리는가? 우리는 에고를 내버리고,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과 평판과 소중한 자아를 내버린다. 야망을 내버리고, 탐욕을 내버리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열정 속으로, 공포 속으로, 터무니없는 기쁨 속으로 떨어진다. (......) 그리고 마침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하게 된다. 신성, 신비, 더 훌륭하고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떨어지지 않으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동안 에고와 탐욕을 버릴 수 있으면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도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떨어진다는 말(falling)이 지니고 있는 비유적 의미 속에는 추락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체면을 구기는 일(falling on one's face), 누군가에게 홀딱 반하는 일(falling for someone), 사랑에 빠지는 일(fall in love)도 다 fall로 표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문합니다.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높은 곳에서 떨어져 깊은 곳을 향해 한창 하강하고 있는 중이다. (......) 우리가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도 추락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즐거움과 강력함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삶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낙엽은 가을햇빛 하나씩 달고 찬란하게 떨어져 내리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까?
오늘은 낙엽이 모두 떠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몸을 날립니다. 우수수 우수수 나무의 몸을 빠져 나와 땅에 내리는 낙엽을 보며 나는 그저 "아아아!" 하고 소리 칠 뿐입니다. 나뭇잎이 거의 다 빠져나간 은행나무 밑은 황금의 옷감을 바닥에 쫙 깔아 놓은 것 같습니다. 구릿빛과 고동색 점묘로 그려나가는 산의 능선 위에 가을햇살이 찬란하게 내립니다.
자연은 떨어져 내리고 있는 동안에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투자한 재화의 가격이 떨어지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추락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미국의 작가 필립시먼스는 어느 날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균형을 잃고 고꾸라진 뒤 일어서지 못하는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육체의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는 육신을 지켜보며 필립시먼스는 낙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떨어지는 것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떨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내버리는가? 우리는 에고를 내버리고,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과 평판과 소중한 자아를 내버린다. 야망을 내버리고, 탐욕을 내버리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열정 속으로, 공포 속으로, 터무니없는 기쁨 속으로 떨어진다. (......) 그리고 마침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하게 된다. 신성, 신비, 더 훌륭하고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떨어지지 않으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동안 에고와 탐욕을 버릴 수 있으면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도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떨어진다는 말(falling)이 지니고 있는 비유적 의미 속에는 추락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체면을 구기는 일(falling on one's face), 누군가에게 홀딱 반하는 일(falling for someone), 사랑에 빠지는 일(fall in love)도 다 fall로 표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문합니다.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높은 곳에서 떨어져 깊은 곳을 향해 한창 하강하고 있는 중이다. (......) 우리가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도 추락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즐거움과 강력함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삶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낙엽은 가을햇빛 하나씩 달고 찬란하게 떨어져 내리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까?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3488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2831 |
2235 | 거울 선물 | 風文 | 2019.06.04 | 1045 |
2234 | '공포'에서 '반야'를! | 風文 | 2020.05.08 | 1047 |
2233 | 아버지의 손, 아들의 영혼 | 風文 | 2022.01.11 | 1048 |
2232 | 희망이란 | 風文 | 2022.06.01 | 1048 |
2231 | 내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 | 風文 | 2022.01.13 | 1049 |
2230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5, 6, 7 | 風文 | 2023.04.24 | 1049 |
2229 | 미세먼지가 심해졌을 때 | 風文 | 2022.05.12 | 1050 |
2228 | '평생 교육'이 필요한 이유 | 風文 | 2022.05.18 | 1050 |
2227 | 희미한 추억을 되살리려면 | 風文 | 2022.02.06 | 1054 |
2226 | 파도치는 삶이 아름답다 | 風文 | 2022.01.12 | 1056 |
2225 | 늙는 것에 초연한 사람이 있을까 | 風文 | 2022.05.16 | 1056 |
2224 | 한 사람, 하나의 사건부터 시작된다 | 風文 | 2019.06.04 | 1057 |
2223 | 타인이 잘 되게 하라 | 風文 | 2022.05.23 | 1057 |
2222 | 행복의 치유 효과 | 風文 | 2022.05.11 | 1058 |
2221 | 영적 몸매 | 風文 | 2019.06.10 | 1059 |
2220 | 관중과 포숙아를 아십니까? | 風文 | 2020.07.04 | 1062 |
2219 | 리더에게 던지는 질문 | 風文 | 2023.07.26 | 1063 |
2218 | 천 번 만 번 씻어내라 | 風文 | 2019.06.04 | 1065 |
2217 | 요즘의 감동 | 風文 | 2022.01.29 | 1065 |
2216 | 단단한 믿음 | 風文 | 2023.04.24 | 1066 |
2215 | 부모의 가슴에 박힌 대못 수십 개 | 風文 | 2022.05.31 | 1072 |
2214 | 평정을 잃지 말고 요청하라 | 風文 | 2022.10.08 | 1072 |
2213 | 행복이란 | 風文 | 2019.06.04 | 1073 |
2212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24. 힘의 오용 | 風文 | 2020.06.24 | 1073 |
2211 | 몸과 마음의 '중간 자리' | 風文 | 2022.05.31 | 10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