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062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산과 들의 나무들이 황홀하게 물들고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무를 나무이게 만든 것은 나뭇잎입니다. 꽃이나 열매보다 나무를 더 가까이 하고,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나뭇잎입니다. 꽃은 아주 잠깐 나무에게 왔다가 갑니다. 열매도 나뭇잎처럼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봄에 제일 먼저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도 나뭇잎이고, 가장 오래 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을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도 나뭇잎이지만, 바람에 가장 많이 시달린 것도 나뭇잎입니다. 빗줄기에 젖을 때는 빗줄기를 막아주었고, 벌레와 짐승이 달려들 때는 자기 몸을 먼저 내주곤 했습니다. 나무도 나뭇잎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겁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압니다.
  
  그것까지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섭니다. 나는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나무를 보며, 버리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삶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큰 말씀을 듣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39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815
285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979
284 8.15와 '병든 서울' - 도종환 (57) 바람의종 2008.08.19 9092
283 8,000미터 히말라야 산 바람의종 2011.11.14 3785
282 6초 포옹 風文 2015.07.30 8621
281 6세에서 9세, 66세에서 99세까지 風文 2013.07.09 10718
280 6개월 입양아와 다섯 살 입양아 風文 2023.01.10 868
279 60조 개의 몸 세포 風文 2023.07.22 812
278 5분 청소 바람의종 2010.10.04 3346
277 5분 글쓰기 훈련 風文 2015.01.20 7053
276 59. 큰 웃음 風文 2021.11.05 683
275 58. 오라, 오라, 언제든 오라 風文 2021.10.31 719
274 57. 일, 숭배 風文 2021.10.30 669
273 56. 지성 風文 2021.10.28 720
272 55. 헌신 風文 2021.10.15 736
271 54. 성 風文 2021.10.14 1096
270 53. 집중 風文 2021.10.13 749
269 52. 회개 風文 2021.10.10 834
268 51. 용기 風文 2021.10.09 1019
267 50. 자비 風文 2021.09.15 810
266 4월 이야기 바람의종 2008.04.10 10084
265 49. 사랑 2 風文 2021.09.14 854
264 4.19를 노래한 시 - 도종환 (106) 바람의종 2008.12.12 7347
263 3분만 더 버티세요! 風文 2015.02.17 6969
262 3년은 기본 바람의종 2010.05.13 3335
261 3~4년이 젊어진다 風文 2022.12.20 72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