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030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산과 들의 나무들이 황홀하게 물들고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무를 나무이게 만든 것은 나뭇잎입니다. 꽃이나 열매보다 나무를 더 가까이 하고,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나뭇잎입니다. 꽃은 아주 잠깐 나무에게 왔다가 갑니다. 열매도 나뭇잎처럼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봄에 제일 먼저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도 나뭇잎이고, 가장 오래 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을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도 나뭇잎이지만, 바람에 가장 많이 시달린 것도 나뭇잎입니다. 빗줄기에 젖을 때는 빗줄기를 막아주었고, 벌레와 짐승이 달려들 때는 자기 몸을 먼저 내주곤 했습니다. 나무도 나뭇잎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겁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압니다.
  
  그것까지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섭니다. 나는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나무를 보며, 버리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삶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큰 말씀을 듣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893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8235
2777 항상 웃는 내 모습에 자부심을 갖는다 바람의종 2012.09.18 9211
2776 가슴에 핀 꽃 風文 2014.12.24 9211
2775 세상을 지배하는 힘 윤안젤로 2013.03.11 9210
2774 칼국수 風文 2014.12.08 9208
2773 「웃는 여잔 다 이뻐」(시인 김소연) 1 바람의종 2009.06.29 9207
2772 고흐에게 배워야 할 것 - 도종환 (72) 바람의종 2008.09.23 9192
2771 나를 바라보는 시간 風文 2015.07.26 9171
2770 전 존재를 기울여 바람의종 2012.11.30 9166
2769 토닥토닥 바람의종 2012.09.14 9144
2768 '병자'와 '힐러' 윤안젤로 2013.05.27 9134
2767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능력 윤안젤로 2013.03.18 9133
2766 한계점 윤안젤로 2013.04.03 9126
2765 「성인용품점 도둑사건」(시인 신정민) 바람의종 2009.07.17 9100
2764 관점 風文 2014.11.25 9096
2763 불사신 風文 2014.12.03 9089
2762 공기와 장소만 바꾸어도... 바람의종 2012.06.01 9073
2761 청년의 가슴은 뛰어야 한다 風文 2014.08.18 9071
2760 들국화 한 송이 - 도종환 (78) 바람의종 2008.10.09 9065
2759 '짓다가 만 집'과 '짓고 있는 집' 윤안젤로 2013.03.28 9040
2758 휴 프레이더의 '나에게 쓰는 편지' 中 - 바람의종 2008.03.10 9026
2757 쉬어가라 바람의종 2012.05.18 9026
2756 길 떠나는 상단(商團) 바람의종 2008.06.23 9023
2755 '보이는 것 이상' 윤영환 2013.05.13 9015
2754 국화(Chrysanthemum) 호단 2006.12.19 9003
2753 그대에게 의미있는 일 바람의종 2012.12.17 898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