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30 03:26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조회 수 10522 추천 수 14 댓글 0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산과 들의 나무들이 황홀하게 물들고 있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나무를 나무이게 만든 것은 나뭇잎입니다. 꽃이나 열매보다 나무를 더 가까이 하고, 나무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나뭇잎입니다. 꽃은 아주 잠깐 나무에게 왔다가 갑니다. 열매도 나뭇잎처럼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봄에 제일 먼저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도 나뭇잎이고, 가장 오래 곁에 머물고 있는 것도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을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보호해 준 것도 나뭇잎이지만, 바람에 가장 많이 시달린 것도 나뭇잎입니다. 빗줄기에 젖을 때는 빗줄기를 막아주었고, 벌레와 짐승이 달려들 때는 자기 몸을 먼저 내주곤 했습니다. 나무도 나뭇잎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겁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압니다.
그것까지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섭니다. 나는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나무를 보며, 버리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삶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의 큰 말씀을 듣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3142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2517 |
160 | 눈에 보이지 않는 것 | 風文 | 2014.08.12 | 10267 |
159 | 집중력 | 風文 | 2014.08.11 | 10268 |
158 |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의식' | 윤안젤로 | 2013.03.07 | 10289 |
157 | 잘 자는 아기 만드는 '잠깐 멈추기' | 風文 | 2013.07.07 | 10294 |
156 |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 | 윤안젤로 | 2013.04.11 | 10307 |
155 | '백남준' 아내의 고백 | 윤안젤로 | 2013.04.03 | 10311 |
154 | 죽은 돈, 산 돈 | 風文 | 2014.12.07 | 10312 |
153 | 화를 다스리는 응급처치법 | 바람의종 | 2012.12.07 | 10323 |
152 |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보라 | 바람의종 | 2013.02.05 | 10323 |
151 | 한 글자만 고쳐도 | 바람의종 | 2012.12.17 | 10339 |
150 | 황무지 | 風文 | 2014.12.22 | 10340 |
149 | 싸이코패스(Psychopath) 인간괴물, 사법권의 테두리에서의 탄생 | 바람의종 | 2008.08.13 | 10357 |
148 |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 바람의종 | 2012.11.01 | 10358 |
147 | 지금 이대로도 충분합니다 | 風文 | 2014.12.02 | 10358 |
146 | 외로운 노인 - A. 슈티코프 | 風磬 | 2006.11.21 | 10377 |
145 | 향기로운 여운 | 風文 | 2014.08.12 | 10419 |
144 | 내 안의 폭군, 내 안의 천사 | 風文 | 2013.07.07 | 10465 |
143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 바람의종 | 2008.07.21 | 10480 |
142 |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 바람의종 | 2012.10.29 | 10485 |
»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 바람의종 | 2008.10.30 | 10522 |
140 | 낙하산 | 風文 | 2014.10.06 | 10544 |
139 | 뿌리와 날개 | 風文 | 2013.07.09 | 10564 |
138 | 자기암시, 자기최면 | 風文 | 2014.12.04 | 10564 |
137 | 자연이 주는 행복 | 윤안젤로 | 2013.05.20 | 10577 |
136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風文 | 2015.08.09 | 105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