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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이란 이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쓸모없게 된 나뭇잎입니다. 구멍이 뚫린 나뭇잎이므로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별로 도움 될 게 없는 나뭇잎입니다. 벌레가 먹고 남은 흔적이 흉하게 몸에 남아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런 나뭇잎을 시인은 예쁘다고 말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뭇잎이 지닌 상처 때문에 예쁘다고 합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고도 말합니다. 시인은 '벌레가 갉아 먹어서 나뭇잎이 못쓰게 되었다'는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제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알면서 벌레를 먹여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제 몸을 덜어 남을 먹여 살린 흔적이기 때문에 벌레 먹은 구멍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몇 장은 벌레에게도 주고 짐승에게도 줄줄 아는 게 나무입니다. 제가 지닌 나뭇잎을 저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나무는 없다고 합니다.
  
  제 몸의 일부를 남을 먹여 살리는 데 쓰며 살아온 떡갈나무 잎, 그 떡갈나무 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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