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3 22:56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조회 수 8067 추천 수 16 댓글 0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0259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9559 |
2577 | 겨울 사랑 | 風文 | 2014.12.17 | 8315 |
2576 | 겨울 준비 - 도종환 (104) | 바람의종 | 2008.12.08 | 6595 |
2575 | 겨울기도 - 도종환 (103) | 바람의종 | 2008.12.06 | 6604 |
2574 | 겨울나무 | 바람의종 | 2011.02.01 | 3547 |
2573 | 격려 | 바람의종 | 2010.04.07 | 2593 |
2572 | 결단의 성패 | 바람의종 | 2009.06.29 | 5535 |
2571 | 결정적 순간 | 바람의종 | 2009.07.06 | 5979 |
2570 | 결함을 드러내는 용기 | 風文 | 2017.12.14 | 3328 |
2569 | 결혼 서약 | 바람의종 | 2012.10.15 | 8742 |
2568 | 결혼과 인내 | 바람의종 | 2009.09.18 | 4642 |
2567 | 겸손의 미학 | 바람의종 | 2011.04.13 | 4305 |
2566 | 경청의 힘! | 風文 | 2014.12.05 | 9061 |
2565 | 경험과 숙성 | 바람의종 | 2009.12.04 | 5288 |
2564 | 경험을 통해 배운 남자 - 하브 에커 | 風文 | 2022.09.02 | 605 |
2563 | 경험이 긍정으로 쌓여야 한다 | 風文 | 2014.09.25 | 11488 |
2562 | 곁에 있어 주는 것 | 바람의종 | 2009.01.24 | 5218 |
2561 | 곁에 있어주자 | 風文 | 2017.01.02 | 6033 |
2560 | 계란말이 도시락 반찬 | 바람의종 | 2009.04.09 | 6763 |
2559 | 계절성 정동장애 | 바람의종 | 2012.04.13 | 6159 |
2558 | 고난 속에 피는 사랑 | 風文 | 2020.07.05 | 904 |
2557 | 고독을 꼬오옥 끌어 안으세요 | 바람의종 | 2011.05.14 | 3622 |
2556 | 고독을 즐긴다 | 바람의종 | 2011.02.23 | 4578 |
2555 | 고독이 나를 위로해줄까요? | 바람의종 | 2010.03.20 | 6002 |
2554 | 고래가 죽어간다 | 바람의종 | 2011.09.29 | 4875 |
2553 | 고령의 나이에 더 활발히 활동한 위인들 | 風文 | 2024.02.17 | 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