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983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손택수ㆍ시인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9678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99011
    read more
  3.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Date2008.09.29 By바람의종 Views8001
    Read More
  4. 정답이 없다

    Date2014.12.05 By風文 Views8000
    Read More
  5.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Date2008.10.10 By바람의종 Views7998
    Read More
  6. 참기름 장사와 명궁

    Date2008.01.28 By바람의종 Views7997
    Read More
  7. 뒷목에서 빛이 난다

    Date2012.11.05 By바람의종 Views7993
    Read More
  8. 연암 박지원의 황금에 대한 생각

    Date2007.02.01 By바람의종 Views7983
    Read More
  9.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Date2008.10.23 By바람의종 Views7983
    Read More
  10. '높은 곳'의 땅

    Date2012.10.04 By바람의종 Views7970
    Read More
  11. 엄마의 주름

    Date2014.08.11 By風文 Views7954
    Read More
  12.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Date2015.08.09 By風文 Views7953
    Read More
  13. 12월의 엽서

    Date2012.12.03 By바람의종 Views7952
    Read More
  14. 「스페인 유모어」(시인 민용태)

    Date2009.06.09 By바람의종 Views7947
    Read More
  15. 유쾌한 활동

    Date2014.12.20 By風文 Views7946
    Read More
  16. '산길의 마법'

    Date2013.04.11 By윤안젤로 Views7945
    Read More
  17.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도 있다

    Date2012.09.04 By바람의종 Views7940
    Read More
  18. '욱'하는 성질

    Date2012.09.11 By바람의종 Views7921
    Read More
  19. 등 / 도종환

    Date2008.06.02 By바람의종 Views7915
    Read More
  20. 예술이야!

    Date2014.12.25 By風文 Views7913
    Read More
  21. 「진한 눈물의 감동 속에도 웃음이 있다 」(시인 신달자)

    Date2009.05.20 By바람의종 Views7905
    Read More
  22. '더러움'을 씻어내자

    Date2012.11.28 By바람의종 Views7904
    Read More
  23. 「1997년도라는 해」(시인 김영남)

    Date2009.07.29 By바람의종 Views7902
    Read More
  24. 좋은 사람 - 도종환

    Date2008.07.21 By바람의종 Views7901
    Read More
  25. 구경꾼

    Date2014.12.04 By風文 Views7901
    Read More
  26. 얼굴 풍경

    Date2012.08.20 By바람의종 Views7892
    Read More
  27. 「사랑은 아무나 하나」(시인 이상섭)

    Date2009.08.11 By바람의종 Views788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