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008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손택수ㆍ시인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전기불에 비하면 촛불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전기불은 방 안의 어둠을 단번에 밀어내버리지만, 촛불은 어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어둠을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어둠과 빛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 품은 부드럽고 안온하다.

어머니는 그 부드러운 불로 밥을 짓고 있다. 촛불로 밥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지는 말 일이다. 거리에선 지금 누군가 십자가에 매달리듯 피뢰침에 매달려 끔찍하게 죽어가고 있고, 입을 틀어막기 위해 칼이 목에 꽂혀 있는 끔찍한 지옥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 끔찍한 현실을 드러내는 게 촛불이다. 비 속에서도 촛불은 타오르고, 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촛불은 타오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우리 시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977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9102
2002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바람의종 2009.04.30 4705
»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바람의종 2008.10.23 8008
2000 어머니 품처럼 바람의종 2010.10.26 3791
1999 어머니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8 7161
1998 어머니 바람의종 2007.12.27 5604
1997 어린잎 바람의종 2010.04.19 3448
1996 어린이를 위하여 風文 2020.07.02 677
1995 어린이라는 패러다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5 6421
1994 어린이는 신의 선물이다 風文 2020.05.08 687
1993 어린이 명상놀이 바람의종 2011.05.07 3699
1992 어린왕자의 별에도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다 바람의종 2009.12.14 4433
1991 어린아이에게만은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 바람의종 2011.02.07 2622
1990 어린 시절 부모 관계 風文 2023.03.25 873
1989 어리석지 마라 風文 2019.08.30 658
1988 어른으로 산다는 것 風文 2020.07.12 1580
1987 어른다운 어른 風文 2020.05.05 649
1986 어른 노릇 風文 2014.09.25 12301
1985 어루만짐 바람의종 2010.04.10 2610
1984 어루만짐 風文 2015.04.27 5179
1983 어루만짐 風文 2015.07.08 7059
1982 어루만지기 바람의종 2009.04.14 5934
1981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風文 2023.04.19 746
1980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하다 바람의종 2011.07.20 5120
1979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하다 風文 2019.08.13 707
1978 어떤 이가 내게 정치소설가냐고 물었다 - 이외수 바람의종 2008.12.28 895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