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433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내가 어려웠을 때 남모르게 나를 도와 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지쳐 쓰러졌을 때 내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나를 비난하고 욕할 때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를 변호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병들어 누웠을 때 내 병실을 찾아와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와 면회실 철창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용기를 내라고 어떻게든 무슨 말인가를 더하려고 애를 쓰며 안타까워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화살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간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잊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내 일이 급하여 그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미처 그의 팔을 잡아 주지 못한 채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용기는 없지만 옳은 자의 편에 서려고 몇 마디 말을 더하다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가 병을 얻어 몸져누웠을 때 나는 그가 병석에 누워 있는지조차 까맣게 몰랐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여 누군가의 위로와 도움을 받고자 할 때 나는 그의 어려운 처지를 모른 채 다른 일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를 위해 자주 기도하지 못하였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도 점점 적어져 갔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이 함께 모여 진정으로 풍요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마음이 강퍅해지려 할 때 온유함이 가장 강한 것임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눈물로 씨 뿌린 것들을 기쁨으로 추수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자비와 사랑이 회개와 화해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옳은 일에 주린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한 가지 옳은 일을 하는 동안 그들 모두가 옳은 사람의 편에 서서 조금씩 나은 세상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박해받는 이의 편에 서서 정의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을 통해 하늘에 세우고자 했던 나라가 땅 위에도 세워 질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고, 그들이 있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갔는데 정작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하였습니다.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710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595
1185 실컷 울어라 風文 2022.12.15 928
1184 실패 앞에서 웃어야 하는 이유 바람의종 2011.11.11 4234
1183 심리적 궁합 바람의종 2012.04.12 4004
1182 심리치유 과정에서 조심할 일 風文 2023.02.15 847
1181 심장을 건넨다 바람의종 2010.07.08 3028
1180 심장이 뛴다 風文 2015.08.05 8662
1179 심판자 바람의종 2010.01.06 4008
1178 십일월의 나무 - 도종환 (99) 바람의종 2008.11.26 6544
1177 쑥갓꽃 - 도종환 (59) 바람의종 2008.08.21 6633
1176 쓰레기 더미에서 노래가 들려올 때 바람의종 2011.01.27 2491
1175 쓸모 없는 존재는 없다 바람의종 2010.07.10 2448
1174 씨앗 뿌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風文 2023.04.03 1059
1173 씨익 웃자 바람의종 2011.05.13 4779
1172 씨익 웃자 風文 2015.06.03 4560
1171 씨줄과 날줄 風文 2014.12.25 8713
1170 아, 그 느낌! 風文 2023.02.06 977
1169 아, 어머니! 風文 2016.09.04 7245
»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 도종환 (84) 바람의종 2008.10.22 5433
1167 아,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요 (129) 바람의종 2009.02.12 4766
1166 아, 이 아픈 통증을 어찌 할까 바람의종 2012.09.13 5986
1165 아가페 사랑 바람의종 2011.04.25 4785
1164 아기 예수의 구유 風文 2023.12.28 680
1163 아기의 눈으로 바라보기 風文 2023.02.22 840
1162 아남 카라 바람의종 2008.12.30 6235
1161 아내의 비밀 서랍 風文 2021.10.28 88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 122 Next
/ 122